아빠는 여행 이후에 예정된 항암을 받지 못했다. 치료를 받으러 나섰던 그 길로 아빠는 입원을 했다. 영양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루면, 3일이면, 일주일이면 끝나겠거니 했던 입원은 기약 없이 길어졌다. 병실엔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평일에 엄마에게 전화로 상황을 전달받고, 겨우 로비에서나 휠체어에 탄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입원 첫 주 주말에 가족 모두 병원에 갔다. 엄마와 아빠는 병원 한 켠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화단을 보며 볕을 쬐었다.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산책이었다. 딸은 꽃과 나비를 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빠는 손녀를 바라보다 입을 떼었다.
“있잖아, 병실 맞은편에 70인가 먹은 할배가 있었어. 그 양반은 간암인가 그래.”
“음.. 근데?”
“근데 며칠 전에 앰뷸런스를 부르더만 서울 병원으로 갔어. 수술? 할거라 카데.”
“...그래? 대단하시네.”
“어어 여기서는 예후도 안 좋고 나이가 많다고 안 해준다 했다데. 근데 기어코 올라가뿟어.”
“음... 아빠도 혹시 서울 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아니. 나는 안 가지. 근데 진짜 이해가 안 가. 살만큼 살았는데 굳이 수술을 받나 싶어가. 나 같으면 그 정도면 그냥 있다가 갈 거 같아.”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다른 거니까 뭐.. 혹시 모르죠.”
“그러니까 말이여.. 근데 난 퇴원을 언제 하노. 의사가 통 말을 안 해주네.”
“회진 돌 때 아빠가 한 번 물어봐요.”
“물어봐도 좀 더 기다리라 카데..”
아빠는 자포자기한 눈빛으로 입을 닫았다. 우리 가족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들었다. 나비는 아빠 근처에 있는 꽃에 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그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더운 날이었지만 하늘은 깨끗하고 맑았다. 어쩌면 아빠에게는 마지막일수도 있는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빠로부터 연락이 온 건 이로부터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퇴근 후에 남편과 다 같이 올 수 있는지 물었다. 그가 평일에는 웬만해서는 딸을 부르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퇴근 후에 딸을 하원 시켜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했다. 딸은 우리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바빴다. 간식으로 겨우 아이를 진정시키고 아빠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얼마 뒤, 아빠에겐 가장 가까운 조카인 사촌언니가 아빠의 휠체어를 끌며 다가왔다.
“할아버지!”
딸이 웃으며 아빠를 반겼다. 아빠도 희미하게 웃으며 손 인사를 했다.
“아이고.. 너 덕에 우리가 한 번 웃네.”
사촌언니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로비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작은 말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긴 침묵 끝에 아빠는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고.. 의사가 항암을 할지 말지 선택하라 하데.”
“왜요?”
“이제 효과가 거의 없을 거래. 암세포가 장 쪽에도 번졌다 이거라. 내가 원하면 한 번 할 수는 있는데 효과가 크지 않대.”
“..포기할거예요?”
“포기해야 안 되겠나. 이제 방법이 없지 뭐.”
“...그럼 이제는...? 호스피스 가요?”
“가야 안 되겠나.”
“아빠가 병원에서만 있다가 죽는 건 싫다 했었잖아요..”
“내가 뭐 집으로 가도 대책이 있나? 잘 걷지도 먹지도 못하는데. 니 엄마는 무슨 죄고?”
“....장인어른... 저는 이야기 못하겠어요.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방법이 남았는데 포기하는 걸 제 입으로 찬성한다는 말을 한다는 게..”
“다른 방법은 더 없답니까?”
남편과 사촌형부의 말을 끝으로 긴 침묵이 흘렀다.
“...항암은 포기하는 걸로 하자. 더 안하고 싶다.”
“...”
“....그래 가. 어디 묻힐 건데? 어디 묻히고 싶어? 내가 잘 묻어줄게. 삼촌은... 삼촌은 가면 그만이지?”
사촌언니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아빠가 치료를 더 이상 하지 못하면 ‘죽음’이라는 예정된 길로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투병을 지켜보며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잘 몰랐다. 내 옆에 있던 엄마는 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우리의 무거운 분위기를 읽은 아이가 눈물을 터뜨렸다. 나와 남편은 번갈아가며 아이를 달랬다.
아빠가 다시 병동으로 올라갈 시간이었다. 엄마는 아빠와 멀어진 후에야 눈물을 그치지 못한 채로 물었다.
“이제 어쩌냐..”
나는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며 담담히 말했다.
”아빠 잘 보내주자.“
말과는 다르게 내 눈에는 뜨거운 슬픔이 차올랐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엄마의 어깨 위로 내 팔을 감아 올렸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안았다.
아빠는 대학병원 최대 입원 일수를 꽉 채우고서야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병원생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댓글 2
목소리가 거친 메추라기
응원해요
혼자라서 외로운 칠면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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