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더 아프기 전, 우리는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침 일찍 서둘렀지만 여행지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식당마다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자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가 번져왔다. 오랜만에 다 같이 함께하는 식사였다.
기분이 좋았는지, 분위기가 좋았는지 아빠가 오랜만에 그릇을 다 비웠다. 아빠는 최근에 본 모습 중에 가장 열심히 먹었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짠하기도 했다. 그는 먹음으로써 생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배부르게 먹은 후 다음 코스는 태화강 국가정원 산책이었다. 여행지를 고르고 나서 남편이 적극 추천한 장소였다. 남편은 ‘장인어른에게 대숲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이곳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꽃 축제도 한창이었고,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지만 아빠의 몸 상태를 고려해 대숲으로 곧장 이동했다. 대숲으로 가자마자 힘들어하기 시작한 그에게 우리는 유아차를 끌 수 있게 했다.
“장인어른, 여기 손잡이 잡으시고 정원이랑 같이 걸으시죠.”
“으응.. 고맙네.”
아빠는 어색한 듯 유아차 손잡이를 건네받았다. 하지만 이내 익숙하게 유아차를 끌었다. 손잡이를 잡고 기대서 걸으니 아빠가 훨씬 편안해보였다. 유아차에 있는 아이도 불편해보이지 않았기에 대숲을 산책하는 내내 아빠에게 아이를 맡겨두었다. 아빠는 쉬엄쉬엄 대나무를 올려다보며 걸었다. 틈틈이 쉬어갈 때는 손녀와 사진도 찍어 달라 요청했다.
“하나~ 둘~ 셋~ 정원아 여기 봐~”
손녀 키에 눈높이를 맞춰 쭈그리고 앉은 아빠와, 밝게 웃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빠도 여느 때보다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듯, 아빠는 오래오래 손녀를 안고 있었다.
대숲을 완전히 빠져나왔을 땐 해가 어느 정도 넘어가 있었다. 이제 숙소로 갈 시간이었다. 지친 아빠는 차에서 쉬게 하고 한참을 달렸다. 도착한 숙소에서 탁 트인 바다가 바로 앞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여행지를 정할 때 나는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아빠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 소소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지친 몸을 바로 뉘였다. 그 뒤로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빠.. 저녁 먹으러 갈 건데, 못 일어나겠어요?”
“..으응... 생각도 없고 못 먹겠어. 너희들끼리 다녀와..”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되는데.. 뭐 좀 사올까요?”
“...샌드위치랑 오렌지주스만 사와..”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요?”
“응...신경 쓰지 말고 다녀와.”
그는 영 기운이 없었다. 우리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얼른 다녀오기로 했다. 아빠가 없는 저녁 식사 자리는 속이 빈 강정 같았다. 먹으면서 나는 아빠에게 사들고 갈 샌드위치 생각을 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저녁을 먹은 뒤 마트에 들렀다. 내일 아침 먹거리를 사고, 빵집에서는 샌드위치를 산 뒤 후다닥 숙소로 돌아갔다.
“아빠 우리 왔어요~”
“할아버지~”
아빠는 잠이 들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그의 휴식을 위해 우리는 각자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한참 뒤 아빠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작은 샌드위치 두 개를 겨우 씹어 삼켰다.
“입에 맞았어요?”
“응.. 맛은 있는데.. 안되겠네. 못 먹겠어.”
“괜찮아요. 쉬어요.”
그는 쓰러지듯 다시 누웠다. 긴 하루였다.
“할아버지~”
이른 아침이었다. 아침잠이 없는 아이가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났다. 아이는 시끄러운 티비 소리에도 누워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가 덮은 이불을 들추기도 하고, 가만히 그를 들여다보기도 하며 한참 그를 귀찮게 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한 번 더 부르자, 아빠가 손녀 이름을 부르며 일어났다.
“어이고 정원이가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
“할아버지!”
아빠는 손녀를 꼭 안았다. 숙소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빠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숙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을 수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아빠에게 조금의 시간이라도 더 허락되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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