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_오독오독, 캐슈넛 한줌과 다시 찾아온 절망
11화_오독오독, 캐슈넛 한줌과 다시 찾아온 절망
2026.08.14
가든·⌛8분

항암치료를 시작한 첫 주, 아빠는 극심한 구역감에 시달렸다. 억지로 겨우 뜬 몇 숟갈도 토해버렸다고 했다. 아빠의 연락을 받고 남편과 본가로 달려가자 거실에 마른 장작처럼 누워 있는 그가 보였다.
“장인어른..”
“...”
“아빠... 괜찮아요?”
“...이래가 되겠나.. 이게 맞는 거가”
아빠는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입을 열어 간신히 말했다.
“장인어른, 많이 힘드시죠.”
남편이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먹기는커녕 냄새만 맡아도 안 되겠어... 항암이 이런 거냐?”
“응... 원래 먹는 약이 부작용이 심하대요..”
“장인어른, 그래도 잘 드셔야 해요. 뭐든 드세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아휴..... 이래서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빠의 마른 어깨에 깊은 한숨이 내려앉았다. 지난주만 해도 씩씩하게 주사치료를 잘 받고 돌아온 그였다. 항암의 악명 높음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 가족이 일을 겪고 있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주고요.”
“...그럴게”
아빠는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내 딸이 아빠를 불렀다. 딸은 한 손에 캐슈넛 봉지를 든 채로 아빠에게 쫄래쫄래 다가갔다. 항암을 시작하며 우리가 아빠에게 사준 것이었다. 아빠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정원이, 이거 먹고 싶어?”
“응! 이거 이거!”
아빠가 봉지를 열어 캐슈넛 한줌을 손녀 손에 쥐어주었다. 딸은 그 중 하나를 아빠에게 내밀었다. 아빠가 웃으며 물었다.
“할아버지 이거 먹을까?”
“응! 할아버지도”
아빠는 손녀에게 받아 든 캐슈넛을 입에 넣고 오래오래 씹었다. 딸도 할아버지 품에서 해맑게 캐슈넛을 오독오독 먹었다. 캐슈넛 때문에 입맛이 돌아서인지, 손녀가 다녀가서인지 그날 아빠는 밥을 반 공기나 비웠다고 했다. 손녀가 건넨 그 작고 동그란 캐슈넛 몇 알이, 어쩌면 그 어떤 항암제보다 강력한 치료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항암치료 주기는 3주였다. 반나절짜리 정맥 주사를 맞고 일주일 뒤 약을 2주간 먹고, 다시 정맥 주사를 맞으러 가는 사이클이었다. 아침 8시에 피검사를 하고 진료 대기 후 항암치료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었다. 피검사에서 수치가 좋지 않으면 치료는 1-2주씩 미뤄졌다. 아빠는 처음 두 번은 주기에 딱 맞춰 치료를 받았지만 이후에는 한두 번씩 미뤄졌다.
두 번 치료를 하고 찍은 CT에서 아빠의 암은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다고 했다.
“여기 간에도 줄었고.. 치료 시작할 때 복수가 조금 차 있어서 걱정했는데 괜찮네요. 환자분, 그래도 잘 드셔야 합니다. 무조건 잘 드셔야 해요.”
희망이 보였다. 이대로만 잘 간다면 수술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갈 때마다 항암이 계속 미뤄졌다. 어떤 날에는 설사가 심하고, 어떤 날은 빈혈 수치가 좋지 않아서, 어떨 땐 아빠가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위에서 짓누르고 있는 종양 때문에 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한편, 항암치료 주기마다 아빠의 입맛은 종잡을 수 없이 변해갔다. 잘 먹던 것도 한 입을 먹고 나면 먹지 않고, 평소 잘 먹지도 못하는 맵고 칼칼한 음식이 더 당기는 식이었다. 또, 본인이 먹고 싶어서 사온 음식인데도 한 입 먹어보고 “옛날 맛이 나지 않는다”며 먹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엄마는 더 먹어보라고 권하고, 나도 최대한 이것저것 사들고 가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 시켜주기도 했다. 먹는 건 아빠의 몫이라 잘, 많이 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때로는 내가 아빠에게 잘 먹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어 스트레스를 주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네 번째 항암을 마치고 찍은 CT에서 암은 오히려 커져 있었다. 의사는 벌써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다음 주에 다른 항암제로 치료해보자고 했다.
‘비싼 치료제인데, 부작용도 적다고 해서 선택한 건데.. 도대체 왜?’
‘이제 돈 있는데.. 써도 되는데. 비싸도 치료할 수 있는데..’
말에서 타자마자 떨어지는 게 이런 느낌일까. 아빠의 머리 위로 어두운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 있었다. 우리는 다시 어둡고 긴 터널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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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안녕하세요. 가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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