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타다닥. …탁.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폴짝. 침대에 몰래 올라오던 두부랑 눈이 마주쳤다.
매일 아침 고양이는 내 머리를 긁는다. 어찌나 긁어대는지, 두피가 아파 잠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시각, 5시
56분. 아침에 눈 비비며 일어나 두루룩… 탁. 밥을 건넨다. 그제서야 나는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하품을 한다.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티브이를 켠다. 익숙하다는 듯이 엄지만 움직여 유튜브를 연다.
내가 일어나서 듣는 첫 소음이다.
‘2인자세요?’ ‘쩜오.‘ 와하하하. 들썩들썩… 불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 채널을 굳이굳이
찾아서 돌리지 않아도, 재미있는 영상이 넘친다. 시간이 어디로 도망간건지, 곧 부산스럽게 준비하고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더라. 그런데
밖은 춥고, 이불 안은 따듯해버려서. 어떡해 어떡해 하고 미적거리다 보면 시간은 벌써 일어나야지 했던 시간을 지나쳐간다. 그르릉,
그르릉… 두부녀석 또 머리를 긁어댄다.
바라봤다. 그 녀석을 바라보다 문득 상상한다. 나는 매일 매일 밥과 시간을 바치는 셈이다.
그르릉…
.
..
…
두부는 오늘도 만족스럽게 시간을 먹는다. 나는 결국 헐레벌떡 따듯했던 온기를 걷어차고, 남은 시간의 꼬리를 붙잡으려 발을 굴렀다.
일어나서 욕실에 가면, 짝을 잃어버린 칫솔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땡그랑. 내 짝인 칫솔을 집어들고 치약을 쭉, 짜본다. 에에옹.
알아, 나도. 돌려주거나 버려야 하는 것 정도는.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은, 버리는 것보다 미루는 데 더 익숙한 생물인 것 같다.
언젠가 돌려줘야지.
언젠가 연락해야지.
언젠가 정리해야지.
그 '언젠가'는 꼭 비 예보 같았다.
오늘은 비가 온대.
아직 안 오는데?
창문을 열어 보면 하늘은 흐리기만 하고, 우산을 챙길까 말까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그냥 나간다.
그리고 정말 비가 오면, 그제야 아, 진짜 오는거였어.하고 젖어든다.
짝을 잃어버린 칫솔도 그랬다. 당장 치워도 아무 일 없을 텐데. 오늘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내일도 괜찮을 것 같아서.
하루정도는 놔둬도 되니까. 그렇게 욕실 한구석에 조용히 서 있었다.
신기한 건, 매일 보는데도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사람은 참 잘 적응한다. 있어야 할 이유를 잃은 것들과 함께여도
생각보다 오래 함께 살아간다.
...
비가 오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닥.
주르르륵.
창문에 맺힌 빗방울은 애써 붙잡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끌고 내려갔다. 비는 무언가를 없애는 게 아니라, 흘러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고.
흙에 묻은 먼지도.
창문에 남은 얼룩도.
나뭇잎 위에 쌓인 꽃가루도.
그 자리에 오래 붙어 있던 것들을 조금씩 움직이게 만든다. 그렇다면 사람도 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울음이든,
시간이든,
우연한 계절 하나든.
억지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나는 아직 그 칫솔을 돌려주지 못했다. 미련이라기보다는, 비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비를 기다린다는 말이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소나기처럼 끝나는 건 아니니까.
어떤 마음은 보슬비처럼 오래 내린다. 젖는 줄도 모르고 걷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소매 끝이 축축해져 있는 걸 발견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별도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끝나는 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마르는 일.
햇빛이 들고,
바람이 불고,
어느 날 문득
'아, 다 말랐네.' 하고 알아차리는 일.
그래서 오늘도 칫솔은 그대로 있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그리고 나는, 창문을 열어 잠깐 빗소리를 들었다.
혹시 마음도, 이렇게 조금씩 씻겨 나가는 걸까.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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