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_아빠의 인사
17화_아빠의 인사
2026.09.26
가든·⌛8분

장례식도 제일 싼 걸로 하라며 마지막까지 아끼던 아빠는, 사실 뒤에서 몰래 나에게 남길 몫을 정리하고 있었다. 뜬금없는 아빠의 심부름을 위해 부랴부랴 달려간 병원에서 아빠는 나를 앉혀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임신 축하금, 이건 둘째 분유와 기저귀 값, 이건 출산 후 병원비…”
“그리고 이건…”
마지막 봉투를 내밀며 아빠가 덧붙였다.
“그동안 내가 아프면서 돈 많이 썼잖아. 가족사진도 그렇고. 이걸로 충당해라.”
나는 울컥 쏟아지려는 눈물을 삼켰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받아요..”
한사코 거절했지만, 아빠도 완강했다.
“아니라. 너 둘째 가진거, 알고 나서 일찌감치 찾아둔기라. 진작 줘야 했는데, 정신이 있어야야 줄거 아니가. 이제 여유가 생겼네.”
그 얘기를 들으니 더 목이 메었다. 나는 마지못해 고맙다, 잘 쓰겠다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아빠의 무능함을 원망했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아픈 자신보다 남겨질 딸을 걱정하는 미련한 사람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영문도 모른 채 아빠가 심부름을 시킨다고 툴툴댔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유년시절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돈 앞에서 유난스러웠다. 그는 엄마에게 물세, 전기세를 조금이라도 아껴야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쌀뜨물이나 설거지 헹굼 물을 그냥 버리거나 쓰지 않는 가전제품의 코드를 꽂아두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또, 나는 남들처럼 새 옷 한번 편하게 입지 못하고 늘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 입었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도 아는 언니네 집 교복을 얻어 와서 잔뜩 줄여 입었다. 내 몸은 어차피 많이 작아서 교복판매점에 가도 맞는 것이 없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옷 수선집 아저씨가 내 사이즈를 재며 난감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교복은 내 몸에는 지나치게 커서 예쁘게 줄여지지도 않았다. 그 옷을 처음 입고 등교할 때 나는 당장이라도 옷을 벗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3년 내내 이상한 교복을 입고 다녔다. 그 긴 시간동안 나는 정말 많이 부끄러웠다.
그때 나는 아빠가 그저 고집스럽고 무능해서 우리를 고생시키는 줄로만 알았다. 남들처럼 다정한 말 한마디, 작은 선물 하나 건넬 줄 모르는 무뚝뚝한 가장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일일이 따로 담은 돈 봉투를 꼭 쥐어주는 아빠의 메마른 손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는 남겨질 자식에게 단단한 울타리를 둘러주기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아끼며 살아온 거였다.
봉투를 가방 깊숙이 넣고 병실을 나오는 길, 가방이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차에 올라타 봉투를 다시 살펴보았다. 봉투 속 돈마다 아빠의 손때 묻은 고무줄이 잘 감겨 있었다. 고무줄을 감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렇게 출발하지 못한 채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빠가 준 건 돈이 아니라, 남겨진 내가 살아갈 힘이었다.

아빠는 본인의 숙제를 끝냈다고 생각한 걸까. 그로부터 며칠 뒤, 병원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아빠의 혈압이 떨어졌다는 이야기였다. 간호사는 아빠의 최고 혈압이 터무니없이 낮아서 승압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주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도, AI에게 물어봐도 승압제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투여한 날로부터 며칠 버티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말만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찾아간 병실 안, 아빠는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침대 옆에는 심장박동과 혈압을 알려주는 바이탈 모니터가 추가되어 있었다. 입원 후부터 주렁주렁하게 달려 있는 수액선과 묵직한 모니터가 아빠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보호자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던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 어떻대?”
“어유.. 혈압이 더 떨어지지는 않는데 오르지도 않아. 오늘도 힘들게 수혈했어. 많이 힘들어했어.”
“그래?... 다들 고생이네..”
나는 오늘따라 창백한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다 말을 걸었다.
“아빠 괜찮아요..?”
“응, 숨 쉬기가 조금 불편해진 거 말고는 다 괜찮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아빠 옆에 앉았다. 장기간 수액을 맞고 누워서 지낸 아빠의 종아리와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다리를 주물러주며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가 많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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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안녕하세요. 가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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