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꼭 용서해야하나요?>
<3화_꼭 용서해야하나요?>
2026.06.20
가든·⌛9분

나는 남들이 보기엔 싹싹하고 효도하는 딸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부모님에게는 인정도, 칭찬도 받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점점 더 뭘 위해 사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게 집은 온기를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의무만 가득한 곳이었다. 집에 붙어 있는 게 무의미했다. 붙어 있어봤자 아빠는 친척 일, 본인 일 관련 심부름만 당연하다는 듯 이것저것 시켰다. 엄마는 내가 커갈수록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다. 마음 한 구석이 항상 답답했다.
10대 때야 쥐꼬리 만 한 용돈 뿐 이었지만 이젠 내 손으로 번 돈도 있었다. 그건 아빠에게 고개 숙이고 미안한 말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집을 벗어나고 싶어 온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렇다고 수업을 결석하거나 대리출석을 부탁할 담력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래와서인지 ‘내 할 일은 다 하고 놀러 다니자’는 모범적인 마인드는 항상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조차도 버림받지 않으려는 ‘착한아이 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아르바이트든, 과제든 내 일을 다 끝내고 일정이 비면 서울로 부산으로 놀러 다녔다. 좋아하는 아이돌 덕질도 하고 친구들과 진탕 술도 마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밤샘도, 외박도 잦아졌다. 서로 얼굴 보는 시간이 줄어드니 당연히 아빠와 데면데면해졌다. 차라리 그 거리가 편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나에게 직접 말은 못하고 괜히 엄마에게 심술부렸다. 엄마는 나에게 아빠가 ‘당신은 뭘 하기에 애가 밖으로만 싸돌아 다니냐.’, ‘뭘 하고 돌아다니는거냐.’ 고 한다며 적당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 그 말을 듣고 또 ‘아 내가 알아서 하는데 어쩌라고!’ 싶었다.

떵떵거렸던 좋은 시절도 잠시, 몇 년이 지나 나는 취업 준비라는 현실에 놓였다.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고 돈을 아끼려면 집에 있어야 했다. 점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한동안 보지 않아서 좋았던 아빠 얼굴을 마주하는 거 자체가 고역이었다. 아빠 얼굴만 봐도 짜증이 일었다. ‘내가 이렇게 화가 많았나?’ 하고 놀랄 정도로 내 안에 화도 넘쳐났다.

날이 갈수록 아빠를 향해 깊어지는 미움은 나를 좀 먹었다. 누군가를 지독하게 증오하는 정서적 밑바닥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버거웠다. 이런 내 자신이 점점 더 버거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성당을 찾았다. 신앙의 세계는 항상 사랑하고 용서해야한다고 이야기했다. 기도를 하면 마음이 나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용서는 단숨에 되는 게 아니었다. 매주 미사를 보면서도 ‘난 왜 아빠를 용서하지 못할까’ 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아빠를 미워했노라고 고해성사를 보고, 기도를 할수록 마음이 더 서늘해졌다.
‘제탓이오, 제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미사를 시작하기 전 하는 공동 고백은 내 가슴을 푹푹 찔렀다. 신앙생활을 할수록 죄책감은 눈덩이를 굴리듯 커져만 갔다.

신앙생활을 할수록 어려워지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볼까 싶어 상담을 다녀 봐도 “이제는 용서해보자, 이해해보자”는 무의미한 말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상담 10회기 동안은 반짝 괜찮아지다가, 상담을 끝내고 일상에 돌아오면 다시 마음이 괴로워지는 일이 반복됐다.
내가 만난 상담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 비슷한 말을 했다.
“부모님 세대에는 다 그렇게 살았어요.”, “신혜씨가 먼저 손 내밀어보는 건 어때요?”
처음 들을 때는 ‘그래.. 내가 생각을 바꾸면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말을 들을수록 마음이 지쳐만 갔다. ‘내가 용서하면 끝나는 문제인가?’, ‘하지만 나는 피해자잖아.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렇게 세상과 부모를 향한 반발심만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을 끌고 찾아간 가장 마지막 상담실이었다. 내 인생사를 묵묵히 듣고 있던 상담사가 내게 툭 던지듯 말했다.
“부모를 꼭 용서해야하나요?”

순간 거대한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소리죽여 울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혼자 짊어지던 응어리가 녹아 내렸다. 그러게, 왜 그 긴 세월 ‘어쩌자고’ 용서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가족이라는 이유로 왜 다 사랑하고 용서해야한다는 마음을 쥐고 아등바등 했을까. 그날부터 비로소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지 않게 됐다.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나답게 살 수 있는 거였다. 아빠를 미워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진짜 독립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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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안녕하세요. 가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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