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낙동강1 – 대구광역시 달서구
I.낙동강1 – 대구광역시 달서구
2026.06.20
시메트릭·⌛10분

경상북도 구미시의 한적한 동네와 근처 산들에서 뛰놀던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익숙한 산길과 익숙했던 동네 친구들 헤어져야 했다. 마침 그때가 어머니가 대구로 직장을 옮기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다.

전에 살던 동네와 확연히 다른 공간이었다. 아파트 단지는 20층짜리 건물들이 낮은 마당을 두르고 있었다. 단지 바깥에도 높이가 낮은 건물들보다 주변에 높게 솟은 아파트가 훨씬 많았다. 주변에 거닐만한 산이 가깝지도 않았고 마주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아졌다.

나는 콘크리트로 꾸며진 공간 사이에서 녹지를 찾았다. 아파트 단지 구석에 놓인 정자, 아파트 곳곳에 있는 화단, 단지 외곽에 심겨진 나무들 아래. 비 오던 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중충한 하늘에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아파트 곳곳에 자리 잡은 녹지들로 향했다. 지렁이가 땅 밖으로 숨을 쉬러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다. 조금씩 비를 맞으며 풀 사이사이를 움직이는 매끈한 민달팽이 그리고 느리지만 이곳 저곳 헤매는 나선형 껍데기를 가진 달팽이.

나는 분리수거장에서 흰색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서 민달팽이와 달팽이를 한 마리씩 잡아서 담았다. 화단의 회양목 사이 사이에서, 정자 주변을 둘러싼 잔디 위에서, 놀이터 주변 화단에서. 비 오는 날 꼬박 2시간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을까. 국을 담아주는 흰색 플라스틱 통에 민달팽이와 달팽이가 꽉 차 있었다. 젖은 옷차림으로 한 손에 달팽이가 가득한 흰색 통을 가지고 집에 들어왔을 때 내 어머니는 이마를 짚으셨다. 내가 동물을 정말 사랑하는 걸 아셨기 때문일까, 혼내는 대신 베란다에 달팽이가 가득한 통을 놓고 날 먼저 씻기셨다.

그리고 쟤들은 사람의 집에서 같이 살 수 없어서 원래 집으로 돌려 보내줘야 한다고 말하셨다. 다시 우산을 쓰고 나는 달팽이들을 원래 집으로 되돌려주려고 나갔다. 어머니는 한 곳에 털고 올 거라고 생각했을텐데, 나는 내가 애들을 주어온 곳 한 곳 한 곳에 다 찾아갔다.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초등학교에 대한 첫 기억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배정된 책상과 의자에 가방을 걸고 기억도 나지 않는 수업을 들었던 순간 뿐이다. 친화력이 부족했던 나는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살던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위축된 채 살았다. 슬기로운 생활 수업 때 초등학교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다. 성서IC 건너로 성서산단이 보였다. 그곳에 서서 우리는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이마트 간판도 보고, 대구 하늘에 떠 있는 작열하는 여름 태양도 자외선 차단필름으로 구경했다.

학교가 끝나면 신발 가방을 돌리면서 집에 들어갔다. 캡스 방범 시스템은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 들어간 나를 도둑으로 인식해서 시끄러운 사이렌이 울렸다. 사이렌이 울릴 때 당황한 나는 뭘 해야 할 지 몰라 슬라이드 폰으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아직도 출동한 캡스 대원들이 대문을 연 나를 보고 당황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와준 옆집 아주머니는 나 대신 사과했다.

시간이 되면 나는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길 건너 학원 건물로 들어갔다. 붉은 색 석재 벽으로 마감된 뻥 뚫린 공간에 발을 디디면 시원한 바람이 나를 빠르게 지나갔다. 4층에는 태권도 학원이, 맨 꼭대기 층에는 과학학원이 있었다. 태권도는 빨간띠까지 끊김없이 배우고 있었지만 나는 몸을 쓰는 것보다 과학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더 재밌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처음 고무동력기를 만났다.

그때의 나는 고무줄의 탄성력이니, 퍼텐셜 에너지니 아무것도 몰랐지만 고무줄을 돌리면 힘이 축적되는 걸 직관적으로 배웠다. 그리고 잡고 있던 프로펠러 날개를 놓으면 하늘 위로, 위로 고무동력기가 날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참가한 교내 고무동력기 대회에서 내가 날린 비행기가 상공에 가장 높은데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기체가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학교에서는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 나를 참가만 시켜준 거였다. 그런데 예상외 결과가 났고, 내가 동상을 받는 걸로 끝이 맺어졌다. 그때에 순위가 무슨 상관이랴, 나는 상 받는게 마냥 기뻤다. 대회가 끝나고 어머니는 나를 차에 태우고 내가 날린 고무동력기를 찾으려 와룡산까지 운전하셨다. 나는 추락해 망가진 고무동력기를 주워 들고는 웃으며 어머니 차에 탔다.

이렇게 어머니를 저녁 전에 보는 날은 많지 않았다. 형제도 없어서 학교가 끝나면 혼자서 태권도장에 갔다가 과학 학원에 갔고, 그 다음엔 피아노 학원으로 이동했다. 피아노 학원은 아직 재건축되지 않아 낡고 낮은 건물이 많은 동네에 있었다. 대구학생문화센터의 넓은 공간을 가로지른 뒤 용산초등학교 옆을 지날 때면 옛날 구미 때 생각이 났다. 좁은 골목길과 색채가 없는 회색빛 3층짜리 주택과 건물들이 즐비했다. 길가 세워져 있는 포크레인이 신기해서 서성이기도 했다.

피아노 학원까지 끝나면 어머니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아직도 그때 저녁식사 장면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따스함이 있다. 어머니는 이제 막 구미에서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고, 나를 식탁에 앉힌 뒤 돼지두루치기를 그릇에 옮겼다. 2006년과 2007년, 나는 수풀대신 빽빽이 들어찬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도시의 삶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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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트릭
안녕하세요. 시메트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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