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아빠’잖아>
<1화_‘아빠’잖아>
2026.06.20
가든·⌛8분

“그래, 아버지는 뭐하시고?”
난 이 단순한 질문의 진짜 무게를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저 말 한 마디 안에 한 사람의 직업뿐만 아니라 그 가정의 경제력부터 삶의 궤적까지 묻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생 때였다. 통상적으로는 연세 있는 어르신들이 첫 만남에 의례적으로 묻는 말이기도 했고, 때로는 잠깐 만나던 사람이 “아버지는 그냥 특별한 일 없이 집에 계세요.”라고 하면 “정년 퇴직하셨구나?”라며 은근히 배경을 떠보는 말이기도 했다.

학기 초, 가정 조사를 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 직업 칸에 뭘 적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자영업’이라는 걸 적어줬는데, 그럼 선생님이 그걸 보고 “아버지 사업하시니?” 하고 되묻고는 했다.
내막을 알 리가 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아빠가 멋진 사장님인줄로만 알았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야 운송업은 자체 사업자등록을 해야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이 한 장에 가난을 증명해보여야만 학비 감면이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학창시절. 우리 집은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서류상으로는 엄연히 사업자였으니까. 아빠는 밥 먹고 잠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뼈가 부서져라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우리집은 겨울에 마음 편히 보일러 한 번 돌리지 못한 날이 허다했다. 집에서도 종일 옷을 껴입고 전기장판에 언 몸을 녹이다 스르륵 잠들던 기억이 여전히 서늘하게 남아 있다.

아빠는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밥벌이를 하러 나갔다. 들어오는 시간이 들쭉날쭉해서 어떤 날은 온종일 보지 못한 날도 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헤집어 봐도 아빠와 함께 한 추억은 얼마 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몇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초6때까지 수학을 가르쳐주던 모습, 자전거 뒤에 나를 태워 장을 보거나 병원에 데리고 다니던 다정한 실루엣. 그 중 특히 고마운 기억이 있다. 글쓰기 대회에 필요한 책을 어렵게 구해오거나, 내가 지나가는 말로 읽고 싶다고 한 책을 어느 날 사오곤 한 일이다. 인터넷 주문도 없고 서점도 흔치 않던 시절, 그는 딸이 원하던 책을 찾아서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을까.

한 번은 아빠가 생일 파티를 해준 적이 있다. 비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말이다. 코스트코 피자를 몇 판 사와서 친구들과 나눠먹었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당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집은 매년 생일이 와도 케이크 불하나 제대로 불지 않았던 집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돌아보면 아빠를 싫어할 큰 계기는 없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틈새로 스며든 빗물이 거대한 바위를 쪼개듯 내 마음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학년이 되어 시간과 시계를 계산하는 단원이 나오면서부터 아빠와의 수학시간은 고문이 따로 없었다. 시계 읽는 법도 어려운데, 한 시간이 왜 60분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는 시끼리, 분은 분끼리 빼는 건 또 왜 이리 어렵고 복잡한지.. 분을 시 단위로 넘기는 개념도 아무리 해도 헷갈리기 일쑤였다.

쩔쩔매는 나를 보며 아빠는 왜 이해가 되지 않는 거냐고, 답답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걸 반복적으로 틀리자 참지 못한 아빠는 나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 고함 앞에 나는 완전히 위축되었고 스스로에게 확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빠도 나를 더 가르치기 힘들었는지 함께 하는 수학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내심 나는 좋았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했으면 싶었다. 그렇게 혼자 공부하기 시작하자 수학도, 아빠도 나와 점점 멀어져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빠를 향한 이유 없는 미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 밤낮없이 고생하는 아빠를 미워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날카로운 죄책감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마음이 답답해 엄마에게 아빠에 대한 불만을 슬쩍 털어놓아 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래도 우짜노, 네 아빠 아이가. 이해하고 살아야지.” 라는 답만 돌아왔다. 그 말에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대답이 튀어나갈 뻔 했지만 겨우 속으로 삼켰다.
엄마의 말은 위로도, 조언도 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어서 미운 아빠를, 그저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품어야 한다는 건 너무 무거운 일이었다. 내 사춘기는 그렇게 아빠를 향한 미움과 미안함의 경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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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안녕하세요. 가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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