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씨와 소주 두 병
탑씨와 소주 두 병
2026.07.23
아이바·⌛7분

“이거 보자마자 네가 제격이다 싶더라.”

어느 날 교수님이 연구 안내문 하나를 건네주었다. 평소에는 나를 찾지도 않으시던 분인데. 음주량과 모발의 알코올 농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는 연구였다. 2개월 동안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양을 기록하면 된다고 했다. 성실히 참여하면 30만 원을 보상으로 준다고 했다. 아, 이래서 나를 찾으셨구나.

그렇다. 나는 전부터 술꾼, 주당, 술고래, 술탱크 등으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연구실에서도 술 잘 마시기로 유명했고, 교수님도 직접 몇 번 보셨다. 뭔가 기분이 묘했지만, 연구에는 흔쾌히 참여했다. 내 일상을 기록하면 되는 거니까. 마시고 취하는 게 내 일상이었으니까. 연구는 내가 얼마나 마셨는지만 물었다. 왜 그렇게 마셨는지는 묻지 않았다.

취하지 않고서는 잠들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맨정신으로 깨어 있는 날들은 사무치게 외로웠다. 적막한 방 안, 마음은 너무나 공허한. 그래서 취하기로 했다. 내 공허함을 잠재우는 비용은 오천 원을 채 넘지 않았다. 시간도 30분이면 충분했다.

방법은 이랬다.

  1. 거의 매일 밤 자취방 근처 홈마트에 들린다.
  2. 천 원짜리 탑씨 오렌지맛 혹은 파인애플맛 1.5L 한 병과 소주 아무거나 2병을 산다.
  3. 집에 돌아온다.
  4. 탑씨를 몇 모금 정도 마신다.
  5. 탑씨 페트병에 소주를 태운다.
  6. 음료수처럼 홀짝홀짝 마신다.
  7. 슬슬 잠이 온다.
  8. 잔다. 아니, 어쩌면 뻗는다에 더 가까운

그러면 어느새 공허함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혼자라서 외롭다는 생각은, 날 이렇게 만든 그에 대한 복수심은 모두 사라진다. 남는 건 몽롱함과 알딸딸함, 약간의 기분 좋음. 어느 날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헤헤 웃다가, 또 어느 날은 슬픈 영상, 이를테면 김진호의 「가족사진」 같은 걸 일부러 보고 한없이 울다 보면 고요하고 적막한 밤은 어느새 지나가 있었다.

그때 내가 필요했던 건 사실 사람이었고, 안정이었는데. “혼자이기 싫어, 숨기기 싫어. 나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돈으로 친구를, 사랑을, 학위를 살 수도 없어서, 정확히는 그것들을 살 만한 돈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그 사람처럼 잊고, 피하고, 잠시 미뤄두려고 그나마 값싸게 먹히는 술을 샀다.

사실 이것도 비싼 편이긴 하다. 누군가한테는 소주 한 병, 당시 가격으로 1,400원이면 되는 건데 나한테는 택도 없으니까. 처음엔 소주만으로 취해보려 했지만, 몇 병을 마셔도 좀처럼 취하지 않았고, 깡소주는 맛도 없었다. 그러다 탄산에 태우면 술기운이 더 빨리 오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 음료수처럼 적당히 맛도 있으면서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었으니까. 콜라랑 사이다는 사치였다. 그래서 제일 싼 탑씨를 골랐다.

어느 드라마 여주인공은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어. 사랑으로 안 돼. 날 추앙해요.’라고 하던데, 나는 채워진 적이 없어, 날 취하게 했다. 추앙이 아닌 취함이었다. 그해 봄 하루 오천 원이면, 공허함은 어느새 내일에 가 있었다.

‘속 쓰린 아침 다시 밥과 마주했고, 이걸 벌기 위해 이걸 또 삼키고 난 나가야 돼.’

어느 래퍼의 가사처럼 술을 벌기 위해 술을 마시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마신 술의 양은 꼬박꼬박 기록했다. 그런데 왜 마셨는지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연구가 묻지 않았고, 그때의 나도 그 이유를 모른 채 마셨으니까.

나는 대체 무엇을 채우기 위해 그렇게 마셨던 걸까? 애초에 술로 채울 수 있는 게 있기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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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바
안녕하세요. 아이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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