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였다. 예전에 만나던 사람에게도 그랬고, 와이프와 연애할 때도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도 와이프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여줬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는 건 나의 사랑 표현 방식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내 생일 미역국은 늘 내가 끓였다.
생일 자체를 꽤 중요하게 생각했다. 태어난 날이 2월 29일이라 그런지 몰라도,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진짜 생일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물론 2월 29일이 없을 때에도 생일은 매년 챙겼다. 4년마다 한 살씩 먹는 것도 아닌데 굳이 건너뛸 이유가 있겠는가.
나에게 생일은 지난 1년의 인간관계 성적표 같은 날이기도 했다. 축하한다고 연락해주는 사람, 시간 내서 만나주는 사람, 선물을 챙겨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올해도 아주 못 살진 않았구나. 그래도 사랑받고 있구나. 하지만 그건 그거고, 미역국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자취를 시작한 뒤로 생일날 아침에 누군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선물과 축하는 멀리서도 받을 수 있지만, 미역국은 그게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먹고 싶어서였지만, 해가 지나면서 하나의 루틴이 됐다. 징크스 같기도, 일종의 의식 같기도 했다. 평소에는 아침도 잘 안 먹으면서 생일날만큼은 조금 일찍 일어났다. 미역을 불리고,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였다. 재료도 매번 똑같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바꿔가며 끓이는 재미도 있었다.
혼자 만든 법칙도 하나 있었다. 생일날 미역국을 끓이면, 선물 하나 정도는 사줘도 된다는. 어차피 둘 다 나였지만.
축하는 이미 충분히 받고 있었다. 그래도 미역국은 내가 끓였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챙겨주든, 적어도 나는 나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도 해주지 않더라도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 정도는 내가 나한테 해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날의 나는 많이 바빴다. 축하받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축하해주는 사람이었다. 생일자이자 주방 담당이었다.
다 끓이고 나면 밥과 미역국을 차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보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 그릇 먹고 나면 왠지 그날 하루도, 앞으로 1년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같이 사는 사람이 생겼지만 내 생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내가 미역국을 끓였다. 와이프 생일에도 내가 끓여주고, 내 생일에도 내가 끓였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해온 일이니 당연한 듯이 해왔다.
그러다 결혼한 뒤 처음으로 내 생일 미역국을 와이프에게 맡겼다.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 무렵 다이어트 중이라 내가 직접 끓이면 끓이면서 계속 먹을 것 같아서 와이프한테 맡겼다.
... 그리고 결국 먹었다.
미역국을 끓일 때 나는 사골국물을 넣는 편인데 와이프는 그러지 않았다. 근데도 너무 맛있었다. 결국 밤에 야식으로 또 먹었다. 직접 끓이지 않았을 뿐, 먹는 건 똑같았다. 아니, 어쩌면 더 잘 먹었다.
그러고 보니 내 생일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고, 그걸 받아먹은 건 처음이었다. 생일마다 사랑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역국은 처음이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앞으로 생일마다 끓여달라고 해야겠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생일 미역국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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