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케이크와 꽃다발을 들고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케이크를 내게 건넨다. 이번엔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러더니 꽃다발을 내밀며 이렇게 얘기한다.
“나랑 결혼해줄래?”
아...
당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 때는 어느 여름 오후. 대구의 한 웨딩 스튜디오. 몇 달 뒤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 촬영 중이었다. 첫 번째 컨셉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새 간식이 늘어나 있었다. 구경하러 온 지인들이 사왔단다. 케이크 박스도 하나 보였다. 왠지 와이프 친구가 가져온 것 같았다.
축하한다고 사온 거겠지. 아님 와이프 주려고. 당연히 내 껀 아니겠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준비하랴 찍으랴,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랴, 와이프 간식이랑 물 챙겨주랴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서 금방 잊어버리기도 했다. 야외 촬영 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쉽지만 일찍 마무리하고 실내로 들어왔다. 다음 컨셉 의상을 갈아입으려는데 사진작가님이 내가 포즈도 잘 잡고 표정도 최근에 본 신랑들 중 가장 자연스럽다며, 지금 의상 그대로 서비스 컷을 더 찍어주겠단다. 이게 웬 떡? 역시 난 운이 좋다며 대기실 맞은편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한창 찍고 있는데 문밖에서 친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촬영 중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던데. 설마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갑자기 헬퍼 이모님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어? 문 열면 안 되는데?’
결국 문을 여셨다. 친구들이 꽃다발과 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어? 아까 봤던 그거다.’
‘아, 우리 축하해주려고 준비했는갑다. 내 친구들은 어떻게 섭외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와이프가 놀람 반 미소 반의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너도 많이 놀랐지?’
하지만 난 티 내지 않았다. 프로페셔널한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카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가 꽃다발과 케이크를 받는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설마 난 아니겠지?’
케이크를 내게 건네더니 이번엔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러더니 꽃다발을 내밀며 이렇게 얘기한다.
“나랑 결혼해줄래?”
아. 당했다!
대기실에 놓여 있던 그 케이크. 내 꺼였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의 3주년 축하해. 결혼해서도 행복하자.’
다음 날 기념일도 챙기고 촬영 뒤풀이도 할 겸 오늘 촬영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돌려받다니. 무지 당황스러웠다. 사실 처음에는 실감도 잘 나지 않았다. 친구가 찍어준 영상 속 나는 눈만 땡그래져서 연신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된 말은 하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울컥했다. 촬영 중이라 오열할 수는 없었고, 올라오는 눈물을 새끼손가락으로 살짝 닦았다.
“오, 진짜 우는구나.”
사람들이 놀랐다. 내가 잘 운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와이프는 친구들에게 내가 분명 울 거라고 말했단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까지 생각하면서 이걸 준비했구나 싶었다. 너무 고마웠다. 그 마음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나. 결국 어버버하고 눈물을 조금 흘린 게 전부였다.
촬영이 끝난 뒤 와이프는 자기가 준비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특히 케이크가 원하던 디자인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근데 나는 다 좋았다. 꽃다발도, 케이크도, 선물도. 무엇보다 그걸 준비한 마음이 좋았다.
나중에 준비 과정을 듣고 나니 그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와이프는 친구들과 미리 계획을 세웠고, 촬영장에서는 헬퍼 이모님과 사진작가님, 플래너까지 작전에 끌어들였다. 서비스 컷을 핑계로 나를 아래층 스튜디오로 데려오는 것까지 짜여 있었고, 우리가 옥상에서 촬영하는 동안에는 내 친구들에게도 계획이 전달됐다. 그러니까 내가 문밖을 보며 ‘촬영 중인데 들어오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 사실 나 빼고 다 알고 있었던 셈이다.
더 웃긴 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는 거다. 이전에도 와이프한테 두 번이나 서프라이즈를 당했다. 눈치 빠른 나를 두 번이나 속이다니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때마다 다시는 안 당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번에도 감쪽같이 속았다. 정작 와이프는 이번엔 준비가 엉성해서 내가 금방 알아챌 줄 알았단다. 내가 너무 태연하니까 다 알고도 모르는 척 연기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아니었다. 나는 정말 끝까지 몰랐다.
'설마 이렇게 정신없는 날에 이벤트까지 하겠어?'라는 생각 뿐이었다.
눈앞에 케이크가 있는데도 내 꺼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그걸 들고 촬영장에 들어왔을 때조차 ‘우리 축하해주려고 그러나 보다’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케이크만 그런 건 아니었다.
저 사랑이 과연 내 께 맞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건 쉽게 믿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진짜 나를 사랑하는 게 맞나, 혹시 나만 더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진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연애하면서 그런 생각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근데 이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설마 난 아니겠지 싶었는데, 나였다.
이 사랑, 내 께 맞구나.
아, 나 진짜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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