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아빠는 창가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을 받은 윤슬이 반짝였다. 아빠는 닿을 수 없는 저 너머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등 뒤로 드리운 그림자가 유독 짙고 어두워 보였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은 푸석하고 주름진 아빠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문득, 환한 조명 아래에서 생기가 돌던 아빠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빠는 한 달 전 불쑥 가족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손녀까지 다 같이 사진 한 번 찍었으면 좋겠어."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이라도 한 듯 담담히 이야기했다. 나는 미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사진관을 예약하면서 아빠에게 혹시 그 날 장수(영정)사진도 찍을 건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4월 어느 봄날에 나들이 삼아 사진관으로 향했다. 아빠는 오랜만에 화장을 받고, 입어본 적 없던 분홍색 셔츠도 입었다. 머리도 넘겨서 한껏 멋을 냈다. 꾸미는 일에 장사 없다고, 거짓말 안 보태고 10년은 젊어보였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어색해했지만 이내 환하게 웃어보였다. 사진사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고자 짐짓 장난스레 물었다.
“우화씨~ 딸래미 중에 누가 더 애를 많이 먹였어요?”
그 질문에 아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툭 받아쳤다.
“둘 다 똑같심다.”
“깔깔깔.” 주변이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날 내 첫째 딸도 장난감 꼬꼬 하나에 뭐가 그리 신나는지 카메라 앞에서 연신 꺄르르 웃었다. 순수하고 맑은 딸의 웃음소리 덕분에 우리 가족도 현실을 잠시 잊고 쉴 새 없이 웃을 수 있었다. 내 눈에 비친 한 순간 순간이 소중해서, 그 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이제 그때의 아빠는 없었다. 그의 어깨는 한 달 전보다 훨씬 더 내려앉았다. 한껏 넘겼던 머리칼은 힘을 잃고 곧 부서질 듯 바스락거렸다, 화사한 분홍색 셔츠 대신 환자복을 닮은 편안한 옷이 그 마른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염없이 바다를 보던 아빠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 서툰 눈빛을 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각자 다른 의미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추천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