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울산에서의 본격적인 자취생활이 시작됐다. 업무 특성상 매일 야근을 하며 시달려도 자취방으로 돌아가면 정신적으로 쉴 수 있었다. 대구에는 안부 확인 차 한 달에 두어 번 올라갔다. 큰 이벤트도 없고, 크게 걱정거리도 없었다.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이런 생활이 지속될 것만 같았다. 잔잔히 흐르던 강에 폭풍우가 퍼부은 건 그 해 가을이었다.
몇 주 내내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추운 날씨도 아닌데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몸도 마음도 엉망이었다. 바빠서 밥을 잘 못 챙겨먹으니 생리도 없이 지나가는구나 생각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 이상한 촉이 발동해 가볍게 임신테스트기를 하나 사서 귀가했다.
‘별일 아니겠지..’
이런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침 첫 소변으로 한 테스트기는 1초 만에 선명한 두 줄을 보여줬다. 와우. 이게 무슨 상황일까. 1초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드라마에서는 이럴 때 어떤 표정을 짓더라? 놀란 마음을 숨기고 일단 출근을 해야 했다. 기쁜 마음으로 바로 가족들에게 알리는 영화 같은 시나리오는 현실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본 테스트기가 나를 뒤흔들 줄이야. 그 날 하루 종일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테스트기가 고장 났을 리는 없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하며 온갖 시나리오를 펼쳤다.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주 주말, 부리나케 달려간 병원에서 의사는 쐐기를 쾅 박았다.
“음, 여기 아기집 잘 보이네요! 예쁘게 자리 잡았고요. 축하드려요.”
그 때의 기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병원을 나서면서 많은 감정이 스쳤다. 빨리 찾아와준 아기에게 느낀 미안함,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죄책감 같은 것들이 나를 짓눌렀다. 한편으로는 양가에 미리 인사를 드렸다는 안도감까지.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그는 요 며칠 내가 조금 이상했다며, 예상했다는 반응 이었다.
“신혜가 괜찮으면 나도 좋아. 어차피 결혼 이야기도 했었고, 조금 일찍 준비하는 거지 뭐.”
그가 비겁하게 도망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기에 그와의 관계에서 오는 두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양쪽 부모님이었다. 특히 아빠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이 컸다.
‘아 몰라! 그냥 들이받아!’
가족이 다 모인 틈을 타서 나는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며 짐짓 뜸을 들였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다.
“....니 임신했나?”
사진을 한참 보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됐다. 오늘 병원 다녀왔다.”
언니는 놀란 얼굴로 말이 없었다. 아빠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사진을, 다른 한 손으로는 호두알을 만지작 만지작 굴렸다. 거실에는 숨 막히는 정적과 함께 호두알끼리 덜컥,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만 울려 퍼졌다.
아빠는 결심한 듯 짐짓 화난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는기고? 대책 있나?”
계획 없는 삶과 지출을 싫어하는 아빠다운 말이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톡 쏘는 말에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에?.. 아뇨. 그냥 알려주는 거죠. 그리고 결혼 준비를 좀 당겨보려고요.”
“그래 마. 우짜겠노. 할 수 있는 건 빨리빨리 다 해라. 가봐라.”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던 내 예상과 달리 아빠는 이내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뱉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대구-울산을 오가며 매주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부랴부랴 예식장을 잡고, 몰아치는 입덧을 이겨내며 웨딩촬영을 하고, 신혼집에 들어갈 가전을 살펴보고.. 모든 게 벼락치기였다. 아무런 입도 대지 않던 아빠가 하루는 나를 불러 앉혔다.
“우째 되고 있노? 집은 우짤끼고?”
“알아보고 있어요. LH로 가려고 하는데 잘 안 나오네요..”
“아휴 마.. 그게 뜻대로 되나. 돈은 안 모자라나.”
“예전에 모아둔 것도 있고 최대한 줄일거라 크게 모자란 건 없어요.”
“받아라. 일단 급한 대로 천만원이다.”
“엥.. 안 줘도 돼요.”
“언제 쓰일지 모르니까 받아놔라.”
“...아유 참. 일단 받아만 둘게요. 나중에 갚을게요. 고마워요.”
아빠가 왜 이러나 싶어 의아했다. 나한테 돈을 준다고? 이 짠돌이가? 고마운 마음도 있었지만 당황스러운 마음이 컸다.
‘노후 준비나 하지, 뭐 하러..’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영락없는 아빠 딸이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만 가지라고! 속으로 자책하며 울부짖었다. 이런 내 마음이 뭔지 나도 알 길이 없었다.
돌아보면 이건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딸이 겪을 혼란과 고단함을 덜어주려는 아빠만의 서툰 표현방식이었다. 내 인생에 들이닥친 가장 큰 폭풍우 속에서 그가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준 첫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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