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색약이다. 빨간색과 초록색 계열은 잘 구분하지 못한다. 옛날에 워크넷에서 적성검사했을 때도 다른 영역은 최소 중위권이었는데, ‘색채지각력’인가 하는 요 녀석 혼자만 최하위였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가. 하루는 교탁 앞에 서서 색각검사를 하는데, 숫자가 보이기는커녕 색깔만 다른 동그라미들이 환공포증 유발하면서 나를 압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반 친구들이 한껏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런 검사를 굳이 공개처형 하듯이 교탁 앞에서 시켰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커서도 색 구분 잘 못하겠다고 말할 때마다 상처받은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빨간색 보여주면서 “이건 초록색인데 왜 빨간색이라고 하냐”며 실실 놀리던 친구놈부터 시작해서, 느닷없이 수박 들고 와서는 “무슨 색으로 보이냐”고 묻던 무례한 인간들까지. 신기하고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그 방식은 늘 예의가 없었다.
교탁 앞에서 대답하지 못하던 그때처럼, 많은 사람 앞에서 나 혼자 얼어붙는 순간들의 반복이었다.
그런 기억들이 쌓이다 보니 색은 내 관심 영역에서 점점 벗어났다. 미술은 애초에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색 자체를 멀리해버렸다.
그러니 연애 시절, 와이프가 컬러링북을 꺼냈을 때 내가 덥석 색연필을 잡았겠는가. 당연히 아니지. 그저 옆에서 구경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와이프가 그러는 거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야. 떠오르는 색이 없어도 되고, 자유롭게 칠해도 돼.”
그 말 들었을 때 처음엔 오히려 더 망설여졌다. 어떤 색으로 어디를 칠해야 할지 몰라 꽤 오래 고민했다.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과 ‘나는 못한다’는 자신감 부족의 환장 콜라보였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색연필을 하나씩 꺼내 들며 물어봤다.
“이건 무슨 색이야?”
그럴 때마다 와이프는 색깔 이름부터 말해주기보다, 먼저 이렇게 되물었다.
“자기 눈에는 어떻게 보여?”
그 다정한 질문 덕분에 왠지 모르게 조금씩 힘을 얻었다. 처음엔 조심스레 연하게 칠했지만, 이내 색이 진해졌다. 며칠 전 다쳤던 허벅지가 욱신거리는 줄도 모르고 푹 빠져 있었다. 어느새 어린 시절 비디오 속의 다섯 살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색을 칠하고 있었다.
수다를 떨며 칠하니 더 즐거웠고, “예쁘다, 잘한다”는 칭찬이 쌓일수록 손놀림은 더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와이프의 한마디였다.
“정답이 없는 거니까, 자기 마음대로 꾸미면 돼.”
그 말이 망치가 되어 내 머릿속 고정관념을 한방에 깨뜨렸다. 그래서 다람쥐와 오리를 함께 칠할 때도, 다음 날 혼자 여우에 색을 입힐 때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림을 마주할 수 있었다.
결과가 예쁘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완성했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설령 예쁘지 않더라도 내 그림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으니까.
꼭 예쁠 필요 있나. 어차피 내 그림인데 말이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칠하면 그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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