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서 잘하는 걸까, 잘해서 좋아하는 걸까
좋아해서 잘하는 걸까, 잘해서 좋아하는 걸까
2026.06.29
아이바·⌛10분

초등학교 2학년 봄이었던가.

동시부에 들어가 ‘편지’를 주제로 네 줄짜리 시를 썼다. 지금처럼 ‘글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거창한 마음은 없었다. 그저 활동적인 것도, 사람이 많은 것도 싫어서 택했던 동아리였다. 시어를 보고 떠오르는 게 있을 때만 몇 줄 적었다. 이제 막 받아쓰기를 벗어난 꼬맹이에게 긴 글은 아직 무리였다.

그래도 소질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말로 풀면 사소한 경험인데 조금 극적으로 표현한다거나, 도치법을 써서 문장을 뒤집어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항상 글이 잘 써진 건 아니었지만, 시를 내면 곧잘 상을 탔다.

그게 시작이었다.

표현하고픈 건 딱히 없었다. 인정과 칭찬이 나를 쓰게 만들었다. 글쓰기로 상을 받을 때의 기분이 좋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생이 자기 담임 선생님에게 “너네 형 또 상 받았다던데?”라는 말을 듣고 본인이 뿌듯해하는 모습도 한몫했다.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괜찮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고 확신할 만한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시를 써서 김천시 1등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면 나는 정말 시를 잘 쓰는 아이인 것 같았다.

그때 썼던 시는 아직도 기억난다. 시어는 ‘숨바꼭질’이었다. 계절의 변화를 숨바꼭질에 빗대어, 봄이 술래가 되어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찾아다니는 내용을 썼다.

어릴 때는 “나 이거 잘해”라고 말하면 그냥 아, 잘하는구나 그랬다. 내가 좋아하고 자꾸 하고 싶으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잘한다는 말에는 조건이 붙었다. 어디까지 했는지, 어떤 결과가 있는지, 증명할 게 있는지. 그래서 “나 뭐 잘해”라고 말하면 그다음에 따라오는 말이 있었다.

“니가?”

중학교 3학년 때 시를 써서 상을 받지 못했다. 그뿐이었다. 한 번의 결과였고 어쩌면 그날 쓴 시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일을 내가 더 이상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상을 받지 못하자 글을 쓸 이유가 사라졌다. 더 이상 두각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중학교를 끝으로 내 학창 시절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그때까진 공부로 인정받았다.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수학을 미리 배웠고, 시험에서도 늘 상위권이었다. 점수와 등수가 오르는 재미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앞선 내용을 공부한다는 우월감에도 사로잡혀 있었다.

‘글을 잘 쓴다’ 대신 ‘공부를 잘한다’로 유능함의 언어가 바뀐 셈이었다.

공부는 내가 유능함을 느끼는 일이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취이기도 했다. 내가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공부가 훨씬 편리했다. 잘하는 아이로 있으면 계속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목표는 김천고에 가는 것이었다. 그때도 김고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알아줬다. 정작 가고 싶었던 현실적인 이유는 집에서 가깝다는 것 하나였다. 중학교 때는 학교를 오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뿐이었고, 걸어서는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막상 원하던 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다음 목표가 없었다. 그때부터 공부에 지친 삶이 시작됐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 있으니 나의 ‘잘함’은 흐려졌다. 점차 흥미를 잃었고 하나둘씩 포기하는 과목이 생겼다.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빠지고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거나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노는 시간이 늘어났다.

돌이켜보면 공부가 어려워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두각을 드러낼 무언가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등을 못 하면, 상을 못 타면, 어느 기준에 못 미치면 나는 못하는 사람이 됐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혼자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으로 나를 먼저 걸러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던 “니가?”라는 말을, 언젠가부터는 누가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나한테 묻게 됐다.

“니가?”

늘 기준은 내 바깥에 있었다. 사실은 그냥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면 끝일 텐데 말이다.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해지기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돋보일 수 있는 곳을 찾게 된 것도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이어왔다면 어땠을까. 상을 받지 못해도 쓰고, 잘 썼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 그저 좋아서 적었다면 어땠을까.

일로 돈을 벌 것도 아닌데,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도 됐을 텐데.

돌이켜보면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잘 쓰는 아이로 인정받고 싶었고, 그 인정 속에서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강점검사를 해석할 때면 나는 어릴 때 무엇을 잘했는지보다, 성과와 상관없이 자꾸 하고 싶고 몰두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묻는다.

요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정받고 싶고,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면 좋고, 잘 썼다는 말을 들으면 기쁘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움직여온 솔직한 힘이다.

다만 이제는 인정받지 못하면 바로 그만두던 아이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 누가 잘한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면 계속해보려고 한다.

누군가 다시 묻더라도.

“니가? 글을 잘 쓴다고?”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응.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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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바
안녕하세요. 아이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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