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안쪽 복도 끝에는 아빠의 병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매주 주말마다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갈 때마다 아빠의 옆자리에 있던 환자는 계속 바뀌었다. 어떤 날에는 새벽에 갑작스럽게, 어떤 때엔 엄마가 자리를 잠깐 비웠을 때 환자들은 운명을 달리했다. 호스피스는 죽음이 너무나 쉽게 오가는 종착지였다. 우리는 그래도 그 속에서도 서로를 다독이려고 애썼다.
호스피스에는 봉사자들의 참여로 열리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어떤 날엔 음악치료사가 아빠 세대에 불렸던 노래를 피아노로 쳐준 적이 있었다. 아빠는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며 투병 이래 처음으로 발을 까딱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중략)」
“아버님~ 노래 잘 들으셨어요? 이 노래 기억하세요?”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학교에서 많이 불렀어~”
아빠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기운은 없었지만 그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음 그러셨구나~ 우화 아버님은 고향이 어디세요?”
“난 말해도 몰러~ 저 봉화 산골짜기에 있지~”
“봉화! 알죠 알죠. 그럼 그때는 좀 어떠셨던 거 같아요? 기억나는 거 있을까요?”
“힘들었지.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아빠는 그때를 회상하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내 기억 속 유년시절은 언제나 배가 고팠다. 먹을 게 다 떨어지면 조카들과 산에 올라 칡뿌리를 캐먹곤 했다. 쌉싸름한 칡 향기는 얼마간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그렇게 허기를 채우면 다 같이 논과 밭을 살피며 잡초도 뽑아내고 수확도 하곤 했다.
돌아서면 지독한 가난이 귀신처럼 따라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먹을 게 생기면 고구마, 옥수수 반절씩 쪼개서 나눠 먹던 그 시절이 왜 그렇게 그리운 건지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하고 조카와 무작정 대구로 떠나왔다. 시골 촌뜨기가 낯선 도시에 자리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통근 버스 기사, 경비, 공장 노동자…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보니 가정도 꾸릴 수 있었다.
나는 평생 내 자식들에게는 내가 겪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세상을 살았다. 다정하게 웃어주는 법 같은 건 배운 적이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올망졸망한 아이들 눈에 내가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밤낮으로 버티는 것, 그저 돈을 아끼고 모으는 것만이 내 아이들을 지키는 전부라고 믿었다…》
노래도, 대화도 끝난 작은 병실 안에는 조용한 정적이 찾아왔다. 봉화의 칡을 뜯어내며 거칠어졌을 아빠의 손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로 대구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오며 견뎌낸 세월도 덧입혀졌을까. 다정함을 표현할 줄 몰랐던 아빠의 무뚝뚝한 세월이, 자식들에게 가난을 주지 않으려 견뎌낸 사랑법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가난했지만 빛나던 아빠는 천천히 시들어갔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야위었고 먹지 못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들었다. 먹지도 못하는데 머리카락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그 속도가 야속했다. 아빠는 본인이 더 아프기 전에 뭔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뜬금없이 머리를 좀 잘라달라고 요청했다. 미용 자격증은커녕 머리라곤 소싯적 내 앞머리 겨우 잘라본 게 전부인데, 다짜고짜 나더러 머리를 치라는 거였다.
“내가 어떻게 잘라요! 망치면 어쩌려고?”
“거참 시끄럽고 말도 많네. 아픈 환자가 해달라는데. 엄마고 너고 전부 다 환자 생각은 안하나? 대충 쳐라, 대충.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는데 뭐 어때서.”
집에서 눈에 보이는 아무 가위나 챙겨 들고 오긴 했지만 한숨부터 나왔다. 자르기 전부터 종이로 된 가운을 만들어야 한다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도 맞는데, 자꾸 아빠 방식대로 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겨우겨우 머리를 자르는데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 투성이였다.
“너무 많이 치지 마라”
“빨리 해라.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 대칭도 맞추지 마라. 볼 사람 없다 카이.”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망쳐도 난 몰라!”
뭔 환자가 그렇게 고집도 세고 에너지도 있는지, 속으로 나는 ‘덜 아프네 덜 아파’ 생각해버렸다. 그렇게 세 모녀와 아빠는 한참 툭탁거렸다. 가위질 소리가 서툴게 울릴 때마다 다 쓴 달력 위로 힘없는 머리칼이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우리 모녀의 손길 아래 가만히 머리를 맡긴 아빠는, 이상하게도 어릴 적 나에게 불호령을 내리던 무서운 아빠가 아니라 아주 순한 양 같았다. 어찌 저찌 머리를 마무리하자, 아빠는 고단했던지 침대에 바로 몸을 뉘였다.
씩씩대며 머리를 마무리 하고 돌아왔지만, 그날 밤 나는 또 다시 후회했다. 좀 더 다정하게 대할걸, 짜증내지 말걸….. 그렇게 소중한 하루가 또 저물어갔다.
댓글 2
뭘해도 짠한 오랑우탄
기다렸어요!
혼자라서 외로운 칠면조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