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사는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 근데 알고 보니 놀 거 다 놀면서도 할 거 다 해놓는 사람이네? 그런 반전 있는 남자로 보이고 싶어요.”
10년 전,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무뇌충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라는 소리를 제일 듣고 싶었거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초1 때, 반 아이들은 다 시끄럽게 뛰어놀고 떠드는데도 혼자 수업에 집중하면서 항상 손 들고 발표하던 게 나였고, 친구들은 다 뛰어놀러 나갔는데 교실에 남아 책을 읽거나 구몬을 푸는 게 나였다. 덕분에 6년 동안 다독왕, 표창장, 백일장 당선은 밥 먹듯이 했다. 이런 내가 좋았다. 열심히 하는 내가. 그만큼 인정받고 보상받는 내가.
그런데 중독은 한 번의 찐~한 경험만으로도 된다고 했던가. 그만 맛을 봐버린 거다. 공부 안 했다고, 일찍 잤다고, 아님 놀았다고 말했는데 아뿔싸! 성적이 잘 나와버렸네? 그랬을 때 주변 친구들에게 천재 소리 듣는 그 맛을. 하아... 끊을 수가 없었다...
중1 첫 시험.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전교 6등을 했다. 심지어 시험 둘째 날, 아쉽게 틀린 문제 때문에 교실 앞문 유리창에 손을 댔다가 산산조각 내버렸으니 어찌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전 과목에서 7문제만 틀렸다. 이미 스스로도 도취되어 있는데다 반 아이들도 내가 공부 잘하는 앤 줄 몰랐다는 듯이 “오~” 하며 추앙해주니, 열심히 했을 때 느꼈던 보람과는 좀 다른 맛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아니, 그래도 중학교 때는 좀 덜했다. 학교엔 공부 잘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일진들도 그만큼 많았다. 굳이 노는 척, 공부 안 하는 척해서 저 무리에 섞이기보다 그래도 상위권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그래서 같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열심히 하는 게 딱히 부끄럽지도 않았다.
본격적으로 맛이 간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중학교 때 해놓은 덕분에 김천고라는 나름 지역 명문고에 입학했다. 당시 경북에서 공부 좀 하는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웬만큼 잘해선 비빌 수가 없었다. 고1 첫 시험에서 바로 그 벽을 느꼈다. 중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었는데, 여기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애들이 널려 있었다. 그냥 잘해서는 특별할 게 없었다. 공부는 별로 안 하는데 성적은 잘 나오는 애. 그게 훨씬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시작했다. 놀토 전날 금요일이면 보충수업 째고 순대국밥 먹고 당구장, 노래방 갔다가 야자 끝나는 시간 맞춰서 집에 가는 걸. 그래야 설령 걸린다 해도 월요일이면 쌤들이 까먹고 안 때리니까. 자신 있는 과목만 열심히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유선 이어폰을 체육복 안으로 넣어서 맨 앞줄에서 PMP로 일드나 무도, X맨 보기를.
근데 웃긴 건 있잖아. 아까 얘기한 중학교 때 같이 공부했던 그 친구들도 고등학교 와서는 다 똑같이 그 짓 했다는 거다. 반 10등 안에 들기만 해도 “너 몰래 공부했냐?” 하면서 쿠사리 주기 일쑤였다. 놀 건 다 놀면서 이 정도는 하는 애들. 우리끼리는 그게 좀 더 멋있었다.
그래도 독서실 가서 뒷공부하면 됐다. 겉으로는 안 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공부하면 성적도 챙기고 이미지도 챙길 수 있었다. 근데 내가 원했던 건 공부 안 하는 척만이 아니었다. 정말 공부를 별로 안 하고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안 하고도 잘하는 놈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해서 잘하는 건 왠지 당연했다. 별로 안 했는데 잘하면 달랐다. 그건 좀 쩌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진짜로 안 하고 있었다.
처음 제대로 걸린 건 고3이었다. 수능은 내신 시험이랑 달랐다. 며칠 바짝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시험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읽고 풀고 외우고 쌓은 게 결국 제 실력으로 나왔다. 벼락치기가 안 먹혔다. 그런데도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안 해서 그런 거였다. 하면 잘한다. 맘만 먹으면. 이게 오래 갔다.
결국 원하는 학교나 가고 싶었던 과가 아니라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갔다. 그래도 ‘내가 안 해서 그렇지’라는 생각은 남아 있었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자신감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근자감에 가까웠지만.
대학교에서도 이 행태는 여전했다. 다행히 학부 때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고 그래서 대학원에도 들어갔다. 이걸로 헛된 희망을 품었다. 믿었다. 거봐. 하면 되잖아.
연구실에 들어간 뒤에는 고3 때보다 더 심해졌다. 베스트 프렌드를 사귀게 되었고, 음주도 절정으로 치닫게 됐다. 선배들과 동기들은 연구실 지박령인데 나랑 그 친구는 5시만 되면 칼퇴해서 술 마시러 갔다.
할 거 빨리 끝내고 노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세미나 직전에 논문을 몰아서 읽고, 교수님이 물어볼 것 같은 부분만 골라 챙겼다. 내가 먼저 선수치기도 했다. 질문으로 나올 것 같은 건 미리 봐두고, 교수님이 묻기도 전에 먼저 설명했다. 모르는 걸 들키기 전에 아는 걸 먼저 꺼내놓는 식이었다. 그게 꽤 잘 먹혔다. 적어도 논문을 꼼꼼히 읽어온 사람처럼 보이는 데는 성공했고, 나는 또 한 번 위기를 넘겼다. 뭘 모르는지 들키지 않고, 아는 걸로 먼저 넘어가고, 그 순간을 모면하는 건 점점 잘하게 됐다.
그때는 그걸 준비성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피하는 건데.
근데 논문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벼락치기로 안 됐다. 수능 때 한 번 느꼈던 걸 대학원에서 또 느꼈다. 결국 제 실력은 며칠 몰아친다고 생기는 게 아니었다. 쌓일만큼 읽어야 했고, 그만큼 사유해야 했다. 쌓은 걸로 다시 쓰면서 또 쌓아야 했다. 나는 그 시간을 자꾸 건너뛰려고만 했다.
공사다망해서 그렇다. 상담에 집중하느라 그렇다. 돈도 벌어야 하니까 그렇다. 속이 시끄러워서 그렇다. 아직 시작만 안 했을 뿐이다. 논문 주제는 잡아놨으니까 쓰기만 하면 된다. 자료가 조금만 더 모이면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결정타. 내가 딱 정신만 차리면 그때는 불붙을 거다. 그런 생각들로 나를 지배했다.
한동안 내 탓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면 할 수 있는데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은 사람.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을 뿐인 사람. 마음먹으면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 계속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안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뭔가 계속 했다. 논문도 읽고, 자료도 찾고, 아이디어도 모으고, 세미나도 나갔다. 문제는 엉뚱한 걸 열심히 했다는 거다. 딱 앉아서 써야 하는데 계속 읽었다. 또 찾았다. 하나 더 읽으면 조금 더 정리될 것 같았고, 어느 정도 모이면 그때 진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논문 주변만 계속 맴돌았다.
처음에는 나만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동기들도 하나둘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하나둘 쓰기 시작했다. 논문 쓰는 사람들은 세미나에도 빠졌다. 나는 계속 세미나에 나갔다. 아직 논문을 못 쓰고 있었으니까. 세미나에 나가 아이디어를 얻고, 조금 더 디벨롭하고, 또 읽었다. 그러는 사이 후배들까지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좀 많이 쓰렸다.
동기들은 논문 쓸 준비를 하더니 어느새 쓰고 있었고, 나는 연구실에 출근해서 여전히 논문 읽을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동안은 말했다.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논문 주제도 있으니까. 아예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니까. 내가 진짜 붙들고 하면 금방 할 거라고. 근데 문제는 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해야 할 때 하고 있느냐였다. 조금 빡세더라도, 재미없더라도, 놀고 싶은 걸 좀 미뤄두더라도 딱 붙들고 해야 할 때가 있었다. 나는 계속 그때를 뒤로 미뤘다.
그렇다고 그 시절을 전부 ‘허세 부리다 망함’으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나중에 상담을 하면서는 그때 내가 극심하게 우울하면서도 티를 거의 내지 않고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때는 그때대로 버티고 있던 것도 있었을 거다. 그래도 회피했던 것도 맞다. 논문을 쓰는 대신 읽었다. 시작하는 대신 준비했다. 모른다고 묻기보다 혼자 알아내려고 했다. 연구실에 오래 붙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계속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내가 컨셉을 만들었다. 공부 안 하는데 잘하는 사람. 늦게까지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데도 자기 할 일은 다 하는 사람. 아무 생각 없이 막 사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잘 살고 있는 사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컨셉이 나를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노력하는 모습을 들키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열심히 했는데 잘하면 당연해 보이고, 열심히 했는데 못하면 쪽팔리지만, 별로 안 했는데 잘하면 특별해 보이니까. 잘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다만 그냥 잘하는 사람 말고, 별로 노력하지 않고도 잘하는 쩌는 사람으로.
그래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고, 어느 순간 정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오랫동안 컨셉을 유지하다 보니 내가 컨셉을 연기하는 건지, 컨셉이 나를 연기하는 건지 모르겠어졌다.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늘 맘먹어야 할 때보다 늦게 맘을 먹었다는 거였다.
공부 안 하는 이미지로 보이고 싶었는데. 노력하지 않고도 성공하고 싶었는데. 노력하지 않는 것만 성공해버렸다.
한마디로. 척하다 척됐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