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도 다정인 양>
"사랑이야? 외로움이야?"
혼자인 것은 외롭다. 외롭다 못해 괴롭다. 그런데 외로워서 만나는 건 사랑이 아니란다. 외로운 건 순간의 감정일 뿐이란다. 외로움을 핑계로 연락을 하면 안 되는 거란다. 밤이 깊어질수록 정적은 무거워만 가는데 나는 전화 한 통 걸 데가 없다.
'왜 사랑은 되고 외로움은 안 되는 걸까.'
순수한 사랑에도 불순물은 섞인다. 외로움과 습관과 미련 같은 것이 한데 섞여서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다른 것이 된다. 그래서 계속 들여다 봐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나의 결핍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쨌든 이래 봐도 저래 봐도 괴로운 게 사랑이다. 사랑하면 넘치는 사랑을 담아둘 데가 없어서 괴롭고, 사랑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괴롭다. 사랑이 어중간하게 남아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또 괴롭다. 사랑을 도구로 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이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했다. 아니, 사실 이건 결심보다는 결정에 가깝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아니 우리를 위해, 그것도 아니면 미래를 위해, 눈 한번 딱 감고 이별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부로 너에 대한 마음을 단칼에 정리할 것이다. 꼼꼼하게 짐을 챙긴다. 손은 바쁘지만 그다지 챙길 것이 많지 않다. 사람은 헤어질 때보다 함께하는 동안 더 많은 것을 남기나보다. 함께 본 영화표도, 짝지어진 머그컵도 실내화도, 심지어는 칫솔조차 그 쓸모를 잃는다. 버리면 그만일 뿐 가져갈 건 많지 않다.
그 모습을 보는 너의 행동이 조심스럽다. 그 시선을 나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내 움직임에도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우리는 마치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말을 걸어도 되는지, 침묵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몸짓. 그 망설임의 공기가 방 안에 가득 번져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같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너는 커피를 권하지만 나는 거절한다. 오늘만큼은 커피 한 잔이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함께 있게 될 것이고, 조금 더 많은 말을 나누게 될 것이다. 결국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일이다. 관계가 가장 위태로울 때 사람은 제일 다정해진다.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베푸는 다정함과 친절. 어쩌면 그것도 사랑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별은 대개 그런 사소한 것들 때문에 미루어진다. 차 한 잔만 더, 이 이야기만 끝나면, 오늘 하루만, 하지만 그렇게 붙잡은 시간들이 관계를 살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늦게 맞이한 이 따뜻함이 우리의 시간을 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너의 다정함이 나를 자꾸 흔들수록 마음을 더 다잡는다. 부족함 없는 다정함이었으나, 나는 오늘 그 다정함을 배신하기로 한다.
이별에도 품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감정이 얼굴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한다. 눈물도 보여선 안 되고 웃음도 보여서는 안 된다. 울면 붙잡히고 싶어질 것 같고, 웃으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 모든 행동이 이별에 흠이 될까 조심스럽다.
식어버린 관계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따뜻해진다. 이미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 주지 않으려 하고, 미안해하고, 이해하려 한다. 헤어질 준비가 되었을 때 가장 다정해진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슬픈 건 그 따뜻한 다정함이 다시 타오르는 불씨가 아니라는 점이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일까, 너를 좋아한 방식이 사랑일까.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이런 고민을 한다. 물론 그게 어느 쪽이든 너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무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너와 나는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말로 확인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행동으로 증명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함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누군가는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좋아했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상대를 외롭게 만드는 짓은 이걸로 충분하다. 떠나는 내게 너는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주 희미하게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는 대답보다 작별인사에 가까웠다. 오늘의 결정은 충동이 아니기에 증명은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순간 '뭐가 괜찮으냐'고 묻고 싶었으나 되묻지 않았다. 코가 시큰했으나 잘 참았다. 내가 괜찮을지, 네가 괜찮을지, 아니면 우리가 괜찮을지. 그 질문에는 너무 많은 의미가 들어 있어, 어차피 어떤 대답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문을 열면 끝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와닿는다. 살면서 수많은 문을 열고 닫겠지만, 이 문은 이제 평생 한 번밖에 닫을 수 없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면 다정함이 쫓아올 것 같아서.
사랑, 나의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지속 가능한'이라는 단어가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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