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포용
실수와 포용
2026.09.21
교오·⌛10분

<실수와 포용>

탕탕탕탕탕. 한번 칼질한 양파나 당근을 이어 붙일 수 없듯.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실수도 그 중 하나. 이봐, 여태껏 실수 한번 안 해본 사람은 없지? 없다면 네가 인간이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아무튼, 인간으로 태어나면 필연적으로 실수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니나 봐. 잠깐, 잠깐. 네 실수를 떠올리진 마. 말리기도 전에 떠올랐다면 이불킥 정도로 끝내고 그만 생각하자. 정신 건강에 안 좋아. 대신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나도 실수 꽤나 하는 사람이거든.

난 오래도록 이렇게 생각해 왔어. 누군가에게 실수하게 됐을 땐 솔직하게 말하는 게 진리이자 최선이라고. 그런데 아닐 때도 있긴 하더라.
처음으로 내 명의의 차가 생겼을 때 이야기야. 오래되었지만 깨끗한 중고차였는데, 어느 날 주차된 차를 살짝 긁어버렸어. 문질러 닦으면 지워질 작은 스크래치였지만 그래도 그냥 가버리진 못하겠더라. 내 차가 소중한 만큼 그 차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앞 유리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20대 초반의 남자애가 받았어. 그런데... 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기 아빠를 소환. 그 애 아빠의 등장. 그 애의 아빠는 차가 심하게 긁혔다며 난리난리, 야단스럽게 호들갑을, 호들갑을. 아, 물론 원만한 타협을 위해 나도 몇 마디로 맞섰어. 하지만 20대 여자애는 말빨로 아저씨의 연륜(?)을 이길 수 없었지.

그 차는 곧장 정비소로 가서 긁힌 부위를 통째로 교체했어. 수리비는 무려 55만원. 며칠 후 그 차를 발견했을 땐, 낡아서 여기저기 긁히고 찌그러진 차에서 딱 한 부분만 반짝반짝 광이 나고 있더라. 그날 이후 차에 있던 스크래치는 사라졌지만 내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겼지.

덕분에 난, 솔직하게 실수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웬만하면 관용을 베푸는, 배포가 (아주 조금) 큰 사람으로 성장했어. 이래서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다고들 말하는가 봐. 교오-후운. 교훈이라고 하자니 왠지 눈물이 찔끔 나는 건 왜일까.

때론 실수가 아닌데도 실수가 되는 이상한 경우도 있었어. 어느 날의 번화가 길거리. 장애인 처우 개선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어.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앞장설 순 없어도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이름과 집 전화번호, 휴대폰 번호를 적은 후 서명란에 사인했어.
그리고 그 사실을 잊을 때쯤, 집 전화벨이 울렸어. 시간은 오전 11시 정도.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있을 즈음의 적당한 시간.

"현이 어머니시죠? 큰일났어요!!! 현이가 쓰러져서 머리를 다쳤어요!!!!!" 엄마는 너무 깜짝 놀라 "네??!!!!" 하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어. 지금은 흔한 레퍼토리지만 그 당시는 보이스피싱이 막 시작되던 시점인지라. 당연히 놀랄만한 연락이었지.

엄마는 급하게 내 방문을 활짝 열었어. 맞아, 나 집에 있었어. 밖이 아닌 집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지.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화를 끊어버리셨어.
다음 날도 비슷한 시간대에 똑같은 전화가 걸려왔어. 나? 응, 또 집. 왜냐면 오후 출근. 그래서 쓰러져 단잠을 자고 있었지. 나중에 엄마가 말하길, 내가 집에 없었다면 깜빡 속을 정도의 고오-급 연기였다고 하더라.
화가 난 엄마가 물었어. "도대체 거기 어딘데요?!" 수화기 너머로 "에이, 씨팔, 중국이다! 왜" 하는 소리를 끝으로 같은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어.

호의가 둘리가... 아니, 호의가 권리가...도 아니고, 호의를 사기로 되돌려 받는 순간이었어. 진짜 세상 이래도 되는 거 맞아? 아마 그때 보이스피싱 당했으면 난 평생 죄인의 마음으로 살았을 거야.

지금까지의 실수가 양파 썰 때처럼 눈이 쬐끔 매운 실수였다면, 감동 실수도 있었어. 응, 감동 실화를 잘못 쓴 게 아니고 감동 실수. 아, 나한테는 감동 실화이기도 하네.

위잉-. 직접 갈아 만든 포도주스. 잔을 건네받는 순간 손이, 미끄러지이이인...다아. 쨍그랑. 아깝고 가여운 내 주스. 깨진 유리잔 조각을 주우려는데 가족들이 모두 만류한다.
"아이구, 왠지 떨어뜨릴 것 같더라. 손대지마. 다쳐." 아빠의 원 펀치. "놔둬, 놔둬, 너는 놔두고 밥이나 먹어." 엄마의 투 펀치. 마지막으로 "나 다 먹었으니까 내가 치울게." 하는 오빠의 강력 펀치.
그렇게 쓰리 펀치를 맞은 나는 얌전히 식탁에 앉은 채로 집밥을 마저 먹고, 새 잔에 담긴 새 포도주스를 마신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나는 이 이야기 안에 있어. 실수 많은 세상 속 안에 있어. 실수했다가 덜컥 덤탱이를 쓰기도 하고, 호의가 실수가 되어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만. 실수를 함께 수습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

네 세상은 어때? 작은 실수에 지나치게 질타받지 않는 세상이길 바라. 실수를 현명하게 책임지고 수습할 줄 아는 사람들이 곁에 많기를 바라. 네가 한 실수를 두고두고 가슴 깊이 담아두지 않기를 바라.
실수의 그림자가 짧은 시간대와 계절에 머물길 바라. 꼭 그러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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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오
안녕하세요. 교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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