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좋은 토마토일까?
누가 더 좋은 토마토일까?
2026.08.24
비보·⌛6분

자, 이제 토마토를 예시로 들어볼까.

누군가는 새빨간 토마토가 좋다고, 누군가는 초록끼 낭낭한 토마토가 좋다고 하겠지.

그렇다면 먹는 방법을 바꿔볼까?

누군가는 달랑달랑 초록잎에 매달려있는 방울토마토를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도각도각 썰어놓고 설탕을 솔솔 뿌려놓은 조각토마토를 좋아한다고 말할 것인데. 그렇다면 누가 더 좋은 토마토일까?

나는 도피유학을 갔었다.

고등학생이었고, 아직 덜 익은 토마토였다.

1학년이 지나갈 때쯤에 어느 순간부터 친했던 그 자리에는 내가 빠져 있었고, 분명히 같은 교실에 있는데도 나만 혼자 남겨졌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내가 그만큼 힘들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부끄러웠으니까.

그게 너무 힘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나는 한국을 떠났다. 그때의 나는 그게 도망이라는 것도 몰랐던 것 같다. 그저 이곳을 벗어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토마토들보다 조금 일찍, 아니 어쩌면 너무 급하게 줄기에서 떨어져버린 토마토였을지도.

시간이 지나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쯤.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고.

왜 자꾸 후에 연락이 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는 그게 잘못인 줄 몰랐다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미안하다고. 나는 그 말을 한참 바라봤다. 미안하다는 말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
말을 받기까지 내가 견뎌온 시간에 비하면 너무 작아서, 어쩌면 어디에 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이제는 지워지고 없는 이야기니까.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다른 토마토보다 쭈글거려서 도 르 륵, 떨어지고 말았었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사과를 받아낼 만큼 단단하게 익은 토마토가 아니었다.

시간이 더 흘렀다.

해가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나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을 만났었지.

정말 다시 소식을 들었을때에는. 그 사람의 곁에 있는 사람이 한때 나를 줄기에서 떨어뜨렸던 아이였다는 것을. (참고로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던 아이는 아니었다.하하.)

참…이상도 하지. 한때 나를 남겨두고 갔던 사람이 이번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의 곁에 있었다.

나는 또 한번,

내가 다른 토마토보다 모자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혹시 나는

조금 덜 예쁘고,

조금 덜 익어서.

또 떨어지고 만 건 아닐까?

.

.

세상은 사랑으로 이루어져있다. 너도 나를 사랑하고. 나도 너를 사랑하고.

엄마, 아빠,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 친구, 너도? 나도. 글쎄.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보이는데.

그 럼… 사랑을 나 눠 야 할 까?

아리송해졌다.

과도를 쥐어본다.

심장을 쥐어본다.

.

.

.

주르륵.

나는 아직 무엇이 더 좋은 토마토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아직 무엇이 더 좋은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몇번씩이나 길을 잃는다.

몇번씩이나 남겨져 망그러진 사랑이 되고만다.

오늘도 여전히, 남겨졌다.

조그마한 돌덩이.

남겨진 잔해.

.

.

.

나는, 토마토가 될 수 있을까?

시리즈 전체보기

댓글 0

author
비보
안녕하세요. 비보입니다.
작성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