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기
독감기
2025.11.10
admin·⌛9분

드디어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이번 독감은 성질이 고약해서 열이 일주일이나 계속된다는 소문이 났기에 무서워서 최대한 조심했다. 외출도 하지 않고 칫솔질도 게을리하지 않고 틈만 나면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그런데도 결국 당해버렸다. 11월 27일의 일이다.

나는 남들에 비해 일거리가 적은 편이지만 주간지 연재를 한 편 하기에 일주일이나 앓아누우면 금세 휴재 사태가 벌어진다. 게다가 이맘때는 잡지 신년호 마감도 잡혀 있다.

아침에 몸이 오슬오슬 떨리길래 체온을 재어보니 37.4도였다. 이거 큰일 났다 싶어 곧장 감기약을 먹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열은 시시각각으로 올라 오후에는 38.5도까지 올라갔다. 그때 잡지 편집부의 A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원고 독촉이다. 가족이 받아 체온이 38.5도나 된다는 사실을 알리자 앞으로 사흘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 편을 써내라는 답이 돌아온 모양이다. 요컨대 다나베 군은 나의 독감을, 꾀병이라고 의심하는 게다.

어째서 그는 의심하는가?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일주일쯤 전, 그에게 농담을 건넸다. 11월 27일 열리는 문예춘추제에 갈 작정인데 분명 거기 모인 많은 사람한테서 감기가 옮아 다음날부터 몸져누워 당신네 일을 못 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자 A군은 말 같잖은 소리 마세요,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28일부터 아플 예정이던 나는 하루 앞당겨 27일 감기에 거려버린 탓에 결국 문예춘추제에 가지 못했다.

다행히 이튿날인 28일 아침에는 몸조리를 잘한 덕분인지 열이 37.2도까지 내려갔고, 오후에도 37.5도에 머물렀다. 때마침 다나베 군이 사나운 발소리를 내며 찾아와 방으로 들어왔다. 어엿한 환자인 만큼 머리맡에는 약봉지와 약병, 체온계, 물병과 컵, 구강세척제 등 간호 도구가 놓여 있다. 얼핏 봐도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진짜 병으로 드러누워 있음을 알도록 해놓은지라, 나를 보자마자 A군은 낙심한 목소리를 냈다.

"정말 감기에 걸리셨군요?"
"정말이야."

나는 애써 가냘프고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면 알잖아."
"열은요?"
"응. 38.7도나 돼."

37.5도라고 진실을 말하면 당장 일어나 글을 쓰라고 강요할 게 뻔했기에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1.2도 속여 말했다.

"그래요? 38.7도나 된다고요?"

A군은 믿는 눈치였다.

"얼음베개 베는 게 어때요?"
"응. 39도대까지 올라가면 얼음베개로 바꿀 거야. 38도대에서 쓰면 버릇이 되거든."
"어라, 탐정소설 읽으셨어요?"

머리 맡에 쌓인 탐정소설을 눈여겨보며 그가 물었다.

"응. 읽으려고 했는데 열 때문인지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질 않네."

뭐, 그가 올 때까지 열심히 탐독했지만 그런 티를 조금도 낼 수는 없지. 나는 체온이 38.7도나 된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애처로운 목소리를 짜냈다.

"묘수풀이 책도 펼쳐봤는데 역시 열이 38.7도나 되니 무리더라고."
"그야 그렇겠죠."
"바둑 얘기를 하니까 생각났는데, 두 점 깔고도 자칭 2단인 B작가를 박살 냈던 일을 들려줬던가?"
"네? 두 점 접어주고도 작살냈다고요?"
"그렇다니까. 박살을 내줬지. 두 점 접바둑을 둬서 성적은 3승 3패로 무승부. 뭐, 당연한 결과지."
"그거 참, 안됐네요. 약한 사람을 너무 괴롭히지 않는 편이 좋아요."
"응, 약한 자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 근데 매번 서비스만 해줄 순 없으니까."
"C작가와는 어떻습니까?"
"응, 그 녀석도 조만간 작살내 줄 셈이야."

그런 식으로 바둑 잡담을 나누다가 A군은 돌아갔다.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원고는 단념한 듯 보였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일기지만 그 뒤 큰일이 났다. A군이 돌아가자마자 무심코 체온계를 집어 겨드랑이에 끼운 채 5분 있다 꺼내 보곤 악 소리를 질렀다. 체온계의 수은이 38.7을 가리켰다.

"와, 진짜 야단났네."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그 38.7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원래의 37.5도로 돌아왔다. 이상한 일이다. 생각건대 A군과 대화하는 동안 38.7도나 된다, 38.7도나 된다고 마음속으로 바지런히 염불하니 그에 몸이 감응하여 혹은 의리를 지키려고 갑자기 38.7도까지 올라간 게 틀림없다. 염불을 그만뒀더니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온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으로 A군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게 되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끝이 났다. 양쪽 다 축하할 일이다. 이상, 인간이 굳게 믿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허술한 일장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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