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이자르강-뮌헨
IV.이자르강-뮌헨
2026.09.21
시메트릭·⌛14분

2019년 3월, 독일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지 5개월 정도 되었을 때 어머니는 재빠른 실행력으로 중국 동방항공 비행기 티켓을 끊으셨다. 어머니는 나 혼자 보내기에 불안하다고, 굳이 왜 따라가야 하냐고 싫은 내색을 비치던 아버지마저 나와 함께 탑승자 명단에 올렸다. 이 부자는 동대구 복합환승센터에서 공항버스를 탔고 28인치 캐리어와 20인치 기내용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높은 천장을 떠받히는 곡선의 철제구조물 그리고 살짝은 어둡게 빛을 내는 조명들 아래에서 아버지와 나는 짐을 항공사에 위탁했다. 여전히 내가 지금 유학을 가는게 맞는 걸까 의심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유학 비용을 지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는 말했지만 더불어서 나보다 뛰어난 애들이 많은데 지금의 내가 유학을 가는게 맞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경유하는 티켓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에 6시간 동안 불 꺼진 베이징 공항에서 시간을 보냈다. 면세점은 모두 문 닫겨있었다. 아버지는 뮌헨 여행가이드 책을 뒤져보면서 숙소까지 가는 교통을 찾아보셨고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뮌헨에서 장기간 거주할 집을 찾았다. VPN으로 독일 IP로 바꾼 다음 페이스북 마켓을 뒤져보면서 월세 매물을 둘러보았다.

집 구하기가 극도로 어렵고 거주비도 독일에서도 매우 비싸다는 뮌헨은 소문과 다름 없이 둘 중 하나였다. 임대비용이 월 200만원이 넘지만 시내 중심에 있거나 월세는 80만원 정도이지만 지역전철을 타고 뮌헨 중심에서 1시간 반 걸리는 지역에 있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 절충점에 있던 집들은 대개 대학생 전용 사설 기숙사이거나 다른 사람이 이미 예약한 매물 뿐이었다.

뮌헨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였던 건 'Willkommen in Deutschland'와 먹구름이 낀 회색 하늘이었다. S반으로 불리는 광역 전철을 타고 뮌헨 시내로 들어가던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중앙역에서 U반(우반)으로 불리는 지하철로 갈아탔다. 1971년에 만들어진 전동차에 타고 숙소 근처의 역에 도착했다.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에는 비가 이미 그쳐서 공기 중에 흙내가 가득했고 옆에는 르네상스식 작은 돔을 가진 고풍스러운 건물이 서있었다. 건물 바로 앞에는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우뚝 솟아 있었고 그 아래에 빼곡한 묘지석이 들어찬 공동묘지가 보였다.

무거운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이 깔린 길 위를 지나갔다. 보도블럭 사이 사이 이끼가 끼어있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독일 전통건축 양식처럼 보이는 건물과 최근에 지어진 듯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 쭉 늘어서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걸어가는 우리에게 센 바람이 불었다. 캐리어를 끌고 가던 아버지는 사람 다니는 인도에 무슨 자갈이 이렇게 많고 길이 울퉁불퉁하냐고 불평했다. 리셉션이 없는 숙소였다. 복도를 따라 고시원처럼 방문이 줄지어 들어서있었다. 나와 아버지는 3인이 겨우 들어갈 엘레베이터에 짐을 먼저 4층으로 올려보냈다. 숙소 방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와 나는 침대에 쓰러져서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 계획을 세웠다. 일단 점심을 먹자. 다시 외투를 걸치고 숙소를 나왔을 땐 먹구름 사이로 햇빛 몇 가닥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길 건너에 있던 독일 가정식을 파는 비스트로에 들어갔다.

Käseplatte(캐제플랏테)가 시그니처 메뉴로 적혀있었다. 조금 기다리자 다양한 종류의 치즈와 독일식 햄인 쉰켄 몇 조각 그리고 독일 빵 세 덩이가 나왔다. 아버지는 다른 걸 시키셨지만 나와 비슷한 구성에 삶은 계란이 촛대 같은 금속대에 담겨나왔다. 우리는 음식을 받자마자 곧바로 헛웃음이 나왔다. 아버지는 나온 음식을 두고 기가 찬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독일 애들은 이렇게 먹고 사나보다. 이걸 밥이라고 먹는다는거지?"

빵을 깨물었을 땐 단백한 밀가루 맛보다 앞서 빵의 딱딱한 표면에 입천장이 까져서 혀에서 쇠 맛이 느껴졌다. 치즈를 잘라서 입에 넣었을 때는 녹진한 유지방 맛이 났고 얇은 쉰켄 한 조각은 소금의 짠 맛이 강렬하게 혀를 강타했다. 아버지는 책에서 읽은 것처럼 독일 사람들의 방식대로 삶은 계란을 까서 먹으려고 했지만, 곧 인내심이 바닥나셨는지 계란을 손에 들고 껍데기를 하나 하나 떼어내기 시작하셨다.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 아버지는 저녁은 마트에서 재료를 사와서 먹자고 하셨다. 트램이 다니는 길을 여러 개 건너서 근처 Lidl(리들)이라는 식료품 할인마트에 갔다. 마트에는 노래도 나오지 않았고 장을 보러 온 독일인들은 무표정하게 카트를 끌고 마트 안을 말 없이 장을 보고 있었다. 회색빛 연옥에 식료품 마트가 있다면 딱 이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부어스트 매대 앞에서 "이건 우리가 아는 소세지랑 비슷하게 생겼다"라며 주황색 Bockwurst(보크부어스트)를 집어드셨다. 나는 자우어크라우트와 초콜릿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그 사이에 샐러드 채소와 요거트를 카트에 담아오셨다. 독일어가 아직 입에 붙지 않았던 나는 계산대 직원에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직원은 어설픈 영어로 친절하게 금액을 불러주었고 영수증이 필요한지 물었다.

장을 보고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사온 식재료를 작은 냉장고에 넣었다. 아버지는 영수증을 보면서 식재료가 엄청 저렴하다고 말하며 뚫어져라 그 작은 종이쪼가리에 적힌 내용을 노려보셨다. 나는 미리 연락이 닿은 임대인에게 연락했다. 내게 독일어를 가르쳐준 누나가 내가 독일에 도착하기에 앞서 연락을 취해준 임대인이었다. 그리고 느려터진 와이파이로 임대할 집까지 가는 경로를 검색했다. 폰으로 내일 타야하는 지하철 경로를 스크린샷 찍고 독일어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뮌헨 관광 가이드책을 잠들기 전까지 붙드셨다. 다음 날 저녁, 두 달 동안 거주할 집에서 임대인과 만났다. 집안은 썰렁했다. 임대인은 우리가 외국인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의로 접이식 침대, 흔들리는 흰색 철제 식탁 간이의자 두 개, 그리고 세탁기와 가스레인지를 남겨주었다.

임대인은 집주인은 따로 있고 본인은 이미 다른 집으로 이사를 마쳤는데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서 짧은 기간 이곳에 세를 놓는 것이라고 했다. 전구 하나만 전선에 연결되어 덜렁거리는 거실에서 나와 임대인은 계약서를 독일어로 작성했다. 임대인도 독일인은 아니었다. 임대인의 이름을 보고 슬라브계거나 그리스계일 것이라 생각해서 물어봤더니 자신은 북마케도니아 사람이고 독일에 온지는 2년 정도 됐다고 했다.

월 800유로, 두 달. 아버지는 이 텅 빈 집에서 월 800유로씩 내면서 두 달을 살아야 하냐면서 역정을 냈다. 나는 다른 집을 2주 안에 구하기는 별 따는 것보다 어렵고 지금 상황에서 여기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다고 아버지를 설득해야 했다. 단기 거주지를 구했다고 누나에게 전달했더니, 뮌헨 시내에서 부가금 포함 월세가 800유로면 엄청 싼거라고 내게 알려줬다. 이 집은 이자르 강에서 도보로 15분 정도에 위치했고 뮌헨 중심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다섯 정거장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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