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책상에 앉아본다. 펜을 들고 원고지를 늘어놓고 드디어 쓰기 시작한다. 한 글자 두 글자 써보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재도 재미없거니와 흥도 안 난다. 도저히 회심작이 나올 성싶지 않다. 이미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상관없어, 하루 더 고민해보자 싶어 모처럼 쓸 준비를 마친 책상 곁을 떠나 거실로 나온다.
"또 못 썼어요?"
아내가 묻는다.
"안 돼, 안 돼."
"속 썩이네요."
"오늘 밤, 할 거야. 오늘 밤이야말로..."
이렇게 말하고는 양지바른 툇마루를 걷거나 정원의 나무 사이를 거닌다. 팔짱을 끼고 끊임없이 흥이 샘솟기를 기다리면서.
T잡지의 편집자가 오는 것이 무섭다. 틀림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어코 원고를 손에 넣지 않는 한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색을 한껏 내보일 텐데... 당신은 빨리 쓰니까요, 이런 말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이 교차한다. 쓴다. 하찮은 글을 쓴다. 그것이 세상에 나온다. 비평된다. 이 생각만 하면 몸도 마음도 구석의 구석의 구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더는 어찌해도 쓰지 못할 것처럼 느껴진다. 조바심이 난다. 이제껏 글을 쓸 수 있던 게 이상할 정도다. 재료고 뭐고 엉망진창이다. 예전에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도 시시하기 그지없다. 어째서 저런 소재로 글 쓸 마음을 먹은 걸까.
"안 써져, 안 써져."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아내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따.
"어슬렁대는 꼴이 어쩐지 동물원의 호랑이 같구먼."
"그러게요."
아내도 내가 딱한 모양이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차마 못 보겠나 보다. 게다가 이럴 때면 나는 기분이 언짢아진다. 이런저런 일에 마구 화풀이를 해댄다. 아내에게 큰소리를 낸다. 아이에게 큰소리를 낸다.
"아, 싫다, 싫어! 소설 따윈 쓰고 싶지 않아."
"안 되면 어쩔 수 없잖아요?"
이렇게 말은 해도 아내는 결코 "대충 쓰면 되지 않나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게 또 한층 고통의 씨앗이 된다. 마침내 T군이 찾아온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번에는 진짜로 못 쓸 것 같아."
"그럼 곤란해요. 기대가 크다고요. 선생님 글이 없으면 잡지 지면이 텅 비고 말아요."
"알긴 아는데, 써지질 않으니."
"할 수 없죠, 하루 더 기다릴게요."
이렇게 말하고 T군은 돌아간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본다. 역시나 안 써진다. 끝내는 펜과 종이를 보는 일조차 고통스럽다. 펜과 종이와 내 마음 사이에 악마가 사는 듯하다. 아내는 걱정이 되는지 슬며시 엿보러 온다. 내가 알면 화를 낼 테니까 들키지 않도록 몰래. 그리고 펜을 쥐고 앉은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자리를 뜬다.
"다 썼어요?"
"아니."
"어, 아까 쓰고 계셨잖아요?"
"..."
그런데 갑자기 한밤중에 흥이 솟는다. 나는 홀로 일어나 펜을 잡는다. 펜이 손과 마음과 함께 달린다. 그 기쁨! 그 강함! 또 그 즐거움! 순식간에 두 장, 세 장, 네 장, 다섯 장을 써 내려간다. 아까 괴로운 작업이라고 말한 푸념은 어느새 잊어버린다. 옛날 문하생 시절로 마음이 되돌아가 있다. 어두운 램프 아래서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채 글쓰기에 몰두하던... 문단도 없고 T군도 없고 세간도 없다. 그저 펜과 종이와 내 마음이 함께 움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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