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8차선 도로가 직교하는 범어네거리를 지나서 수성교 쪽으로 이동하면 차선이 양방향 4차선으로 차도가 좁아지고 낙동강 본류에 비해 너무나 가느다란 신천이 수성교 아래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속 큰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이동하면 대구의 큰 교회 중 하나인 대구 동부교회의 뾰족한 시계탑이 보였다. 이 도로는 내가 수성구로 이사오기 전까지 살았던 달서구까지 쭉 이어진다. 이 넓은 도로를 쭉 타고 반대로 가면 2011년에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가 열렸던 대구 스타디움까지도 갈 수 있다. 이 대로는 대구를 관통하는 척추와 다름없었다.
아무리 옆길로 새보려고 해도, 대구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달구벌대로를 따라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친구들과 영화 인터스텔라를 같이 보자고 했을 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달구벌대로를 따라서 중앙로에 있는 교보문고 앞 영플라자 CGV에서 모였다. 다 같이 약식 마라톤을 뛰어보자고 했을 때에는 달구벌대로를 따라 반대로 이동해서 2호선 대공원역에서 내렸다. 주변에는 스타디움 보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탁 트여 있었다. 이제 막 여름을 조금 넘긴 9월 초, 아직 햇빛은 강렬했지만 공기는 여름 때보다 서늘해지고 있었고 해가 진 뒤에는 21~23도까지 기온이 내려갔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해 온 외투를 걸치고 나머지 거리를 뛰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가 정해지기 직전 학교에서 3학년 전체를 대구 학생문화센터에서 하는 뮤지컬을 관람시키러 달서구로 보냈다. 내게는 그 지역 모든 곳이 익숙한 동네였지만 내 중학교 친구들에게는 그 동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문화센터로 이동하는 길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있었다. 내게만 익숙한 길목들과 나무들 그리고 이제는 빛바래가는 아파트의 외벽 페인트를 보며 어릴 적 기억들을 떠올렸다.
학생으로서 수성구에서 달서구까지 이동할 일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친구들은 바로 옆에 있는 학원가에 있는 학원을 다녔고, 백화점, 영화관 그리고 서점은 지하철을 타고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중앙로에서 다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로 올라갈 일이 있다면 범어역에서 버스를 타고 10분만 이동하면 동대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현장학습으로 법원에 갈 일이 있어도, 대구지방법원이 범어동에 있다. 많은 것이 수성구와 그 주변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달서구는 학교에서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현장학습이 아니면 올 일이 없었다.
뮤지컬이 끝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지하철역으로 돌아갈 때 나는 홈플러스 앞에 트럭을 세운 채 분식 장사를 하시던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고 다시 문화센터 쪽으로 이동해서 피아노 학원을 가던 길을 되짚으며 다시 그 주변 동네를 둘러봤다. 수성구와 달리 달서구는 여전히 내가 기억하던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와 달리 수성구에선 재개발 지역이 선정되어 원룸촌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고, 대공원역 근방에서는 대구 라이온즈 파크 뿐 아니라 많은 건설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과학 영재교육 역시 수성구 황금동에서 이루어졌다. 과학교육원과 대구과학영재학교가 같은 곳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과학교육원에 방문할 때에도, 내가 한 때 가고 싶어하던 학교를 보러 갈 때도 수성구를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수성구는 대구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임과 동시에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과 엄청 부유한 집안의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을 다니게 됐다. 그 친구는 이사 가기 전까지는 재개발되기 직전의 원룸촌에서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번은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수성교가 아니라 대봉교를 건너는 쪽으로 길을 바꿔서 걸어갔다. 3호선이 이제 막 운행하기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대봉교 위로 노란색 모노레일이 지나는 모습을 우리는 신기해 하며 걸어갔다. 친구의 동생 이야기를 듣고 있을 무렵 우리는 대봉교 건너 신천을 따라 걸어가다 어둑해지는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친구의 집은 주황색 백열등이 빛을 내는 가로등 하나가 어둑하고 구불구불한 길목에 띄엄띄엄 서있는 곳에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수성구의 모습에 정말 다른 의도 없이 “수성구에 이렇게 어둑한 곳이 있었구나”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게 말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친구는 여기가 집세가 좀 싼 곳이라 어릴 때부터 여기서 살았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대조적으로 다른 친구의 집은 황금동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높은 아파트였다. 그 동네는 밤에도 학원들의 불이 밝혀져 있었고, 사람들은 근처 식당이나 술집에서 늦게까지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다. 가로등은 환한 백색 빛을 밤새도록 내뿜었다.
수성구는 그저 한 지역구였지만 그 대비가 너무 선명했기 때문에 나는 중간에서 양쪽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중구의 일반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나는 수성구에서 당연한 것이 다른 대구의 행정구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피부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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