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처를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고 믿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상처를 통해 성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은 상처가 없어도 잘 자랐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당신을 상처 없이 지켜주고 싶다.
심지어 그대 전혀 성장하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시인 ‘이상’이 연인 금홍에게 썼다고 "알려진"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글을 읽다가,
몇 년 전 대학원 때 들었던 긍정심리학 강의가 떠올랐다.
그때 배웠던 ‘외상 후 성장(PTG)’에 대한 내용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모든 사람이 외상 후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하지 못한다 해도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성장을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처럼 말하는 순간
누군가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된다.
한의학에는 ‘명현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부작용과 다르지 않은 증상을 두고,
지나고 나서 그것이 회복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하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조차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낫고 있는 과정이라고,
이 시련이 결국 너를 성장시킬 거라고 쉽게 말한다.
그 일이 회복의 과정이었는지,
그저 또 하나의 상처로 남았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데도.
삶도 그렇다.
‘지나고 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은,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이다.
아직 터널을 지나는 사람에게
그 말은 좀처럼 닿지 않는다.
이 터널을 지나면 빛이 있다?
지금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어둠뿐이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건넨 말일 것이다.
허나 그 말이 또 하나의 요구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빛을 말하기 전에,
그 어둠 속에서 버티고 있는 마음부터
그저 인정해주면 좋겠다.
성장한 사람이 대단한 거지,
성장하지 못한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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