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 EX. 옛인연. 뭐, 그런 단어로 불리는 사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더 옛연인이었다.
부웅-
연락이 왔다. 왜 연락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묻지도 않았다. 사람은 가끔 끝난 이야기를 다시 펼쳐본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끝났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미련이라기보다는, 궁금함에 가까웠다. 잠겨 있던 창문을 잠깐 열어보는
일 정도라고 생각했다. 활짝,하고. 그래서 만나자는 말에 불쑥 나갔다. 그렇게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생각보다 아무 감흥은 없었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다. 그냥, 재미가 없었다.
아니. 뭐… 지금 생각하면 재미가 없었던 게 아니라, 나는 그 사람의 사랑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 사람은 우리가 만난 첫날부터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하다. 오래 받다 보면, 고마움도 당연해진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나는 그 사랑을 모르는 척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마음 위에 편하게 기대기도 했다. 일에 몰두하더라도, 퇴근 후에
연락이 늦어도, 기다려 줄 거라고 믿었다. 사랑을 하는 일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더 믿고 있었다.
.
달그락.
“잘 지냈어?”
그래도 아주 조금은 기대했다. 2년이면 사람 하나쯤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달라진 건 지나가는 계절뿐이었다. 그 사람도, 나도.
시간만 조금 흘렀을 뿐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미안."
사실은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저 어색하게 가라앉은 공기를 어떻게든 흘려보내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꺼낸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말
하나에 그 사람은 오래 참아왔던 것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때 왜 그랬어?"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하나 시켰다. 신기했다. 예전 같았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신경 썼을
텐데. 케이크를 크게 떠서 한입 먹었다. 케이크가 더 맛있었다. 그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 그리고 그 케이크를 거의 혼자 다 먹고
나서야 문득 알았다.
아. 이 사람, 단 거 안 좋아했었지.
아. 이 사람, 괜히 연락을 받아주지 말 걸 그랬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뚜벅. 뚜벅. 문득 헤어지던 날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 그 사람은 나를 붙잡았었다. 그날의 나는 그저
빨리 끝내고 싶었다. 더 상처 주기 전에 끝낸다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끝내고 싶었던 건 관계가 아니라 불편했던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 정리했어. 미안." 그 말이 얼마나 비수처럼 박혔을지, 얼마나 오래 마음에 남았을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토마토는 익으면 자연스럽게 꼭지에서 떨어진다. 억지로 잡아당긴다고 더 잘 익는 것도 아니고, 붙잡는다고 더 오래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도 조금은 그랬던 것 같다. 한쪽은 이미 계절이 끝났는데, 다른 한쪽은 아직 여름이었다.
아.
그래서 우리가 헤어졌었구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은 끝까지 붙잡고 있었고, 한 사람은 이미 놓아 떨어뜨린 뒤였다. 나는 그 사람을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랑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거였다.
어쩌면 그날의 만남은 다시 시작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끝났다는 사실을, 이제야 같은 계절에서 받아들이기 위한 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추천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