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_아직 부족하니 더 잘 지도하겠습니다>
<2화_아직 부족하니 더 잘 지도하겠습니다>
2026.06.20
가든·⌛10분

나는 점점 부모님과 대화를 기피하는 딸이 되어갔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도 부모님이 ‘어쩌자고’ 자식을 두 명 낳았나 싶었다. ‘번듯하게 잘 키울 자신이 없으면 낳지를 말지.’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쌓여만 갔다.
나는 이런 마음을 직접 표현할 정도로 도발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깊은 곳에 마음을 꽁꽁 숨겨 가두고 도망 다녔다. 내가 아빠를 피할수록 그도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나에 대한 평가도 엄격해져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처음으로 언어 1등급을 받았을 때였다. 아깝게 딱 한 문제를 틀렸다. 그래도 처음 보는 등급에 뿌듯해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당시 학교에서는 부모님 확인 사인을 받아오게 했다.
‘제일 잘 받은 성적인데..’, ‘아빠가 좋아하겠지?’, ‘이 정도면 칭찬해주시겠지?’
엄마, 아빠가 성적표를 받아들고 웃는 모습을 상상했다. 집에 오는 내내 내 마음은 바람이 잔뜩 든 풍선처럼 붕 떠 있었다.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괜히 아빠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그러다 간신히 탁자 위에 성적표를 올려두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아침, 아빠가 돌려준 성적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직 부족하니 더 잘 지도하겠습니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잘한 거 하나는 칭찬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
늘 칭찬에 인색했던 아빠에게 서러운 마음이 터져 나왔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선생님에게 다시 성적표를 내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 선생님이 아빠의 코멘트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로부터 시간이 좀 지난 고등학교 1학년 말쯤이었다. 아빠는 어느 날 나를 앉혀두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교 꼭 가야긋나?”
“...?”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다는 한국에서 ‘대학을 꼭 가야겠냐’라니? 나로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따로 없었다. 그는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요즘 고졸 공무원 채용도 많다카데.. 대학 가면 또 공부해야 되는데 돈도 시간도 버리는 거 아이가. 그럴 바에는 지금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해서 바로 취업하는 게 안 낫긋나? 한번 알아봐봐라.”

대답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빠가 운송업을 접으면서 집이 급격하게 어려워진 건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지 말라니.. 출발선에서 달리지도 못했는데 반칙이라고 호루라기를 불면 이런 느낌일까? 어안이 벙벙했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지. 가난은 익숙하고 동시에 무서운 존재였다. 아주 지독한 꼬리표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돈 걱정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돈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아빠 입에서 나온 말은 나에게 쾅 쐐기를 박았다. 내 미래가 저당 잡히는 느낌이었다. 언니는 사교육도 남들 하는 만큼 시켜줬으면서 나는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한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지원해주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늘 서러웠는데 이제는 대학까지 가지 마라니. 나는 그 정도로 투자 가치가 없는 자식인건지 의문이 들었다.
방으로 돌아와 아빠 말을 곱씹으면서 맥이 탁 풀렸지만 정신은 차갑고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내가 제일 싫다고 생각한 공무원을 말하다니. ‘어디 한 번 두고 봐라.’

그때부터 손을 놓았던 수학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모의고사에서 2점, 3점 문제라도 제대로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고군분투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포기한 수학이 제대로 풀어질 리 만무했다. 문제를 볼 때마다 모스 기호를 해독하는 기분이었다. 실로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수학을 보자는 마음으로 쉬는 시간, 야간자율학습 시간 할 것 없이 쳐다봤다.
기초적인 문제라도 풀어보면 ‘중간이라도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공부의 절반은 엉덩이 힘으로 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 말처럼, 진득하게 앉아 있다 보니 조금씩 결실이 보였다. 성적은 가끔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신기하게도 중간에서 절대 더 내려오지는 않았다. 안정적인 성적을 보여주니 아빠도 생각이 바뀐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내게 공무원 시험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마지막까지도 잔인하게 인색했다. 아빠는 내 입시에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늘 방관했다. 그러다 내가 목표한 대학에 떨어지자 내심 아쉬움을 드러냈다. 제일 아쉬운 건 난데, 또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튀어나왔다. 그러든 말든 내 길을 가야했기에 치열하게 살았다.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대외활동도 종종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따뜻한 피드백은 없었다. 난 그냥 눈치껏 알아서 공부하고, 뭘 하든 알뜰살뜰 잘 하는 딸이 되어야하는 걸까? 그런다고 내가 얻는 게 뭘까? 인생에서 가장 빛난다는 20대에도 내 안에서 저항감과 혼란함은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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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안녕하세요. 가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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