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필 신혼집에 들어가기로 예정된 날에 출산을 하게 되어 어수선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이삿짐 정리가 미처 다 되지 않아 퇴원하는 날에도 어쩔 수 없이 아빠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세상의 빛을 본지 이제 4일 된 아기와 함께 아빠 차에 올라 신혼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아빠는 뜬금없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한 번은 모유에 족발이 좋다며 사들고 오고, 한 번은 아기 기저귀를 들고 오는 식이었다. 산후도우미는 “아버지가 딸을 참 끔찍이 생각하네요~ 보기 좋아요” 하며 남의 속은 모르는 채로 웃었다. 몸도 아직 좋지 않은데다 밤낮으로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아빠의 방문이 마냥 달갑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적어도 2주에 한 번 아기를 보러 왔다.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정원이(손녀) 보러 가자!”는 말을 한다고 했다. 한 번 오면 한 시간 정도 손녀를 안아보고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집에 간다며 일어나고는 했다. 그런 아빠 모습은 마치 관심 있는 듯 아닌 듯 행동하며 곁을 스윽 맴도는 고양이 같았다.
그가 손녀를 보는 일 외에 나를 불러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다. 나만 조금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를 좋아해주니 나로서는 나쁠 건 없었다. ‘늙으면 원래 저런 건가..’, ‘첫 손녀라서 예쁘겠지..’ 싶어 그냥 두기로 했다. 아이가 크면서 점차 잠잠해지겠거니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 그가 한 번은 불쑥 전화를 했다.
“정원이 통장 있나?”
“만들어두긴 했는데 왜요?”
“용돈 넣어줄라고.”
“엥. 나도 부모급여랑 모아놓고 있어서 괜찮아요.”
“내가 뭐 술을 마시나 담배를 피나. 그 돈 없는 셈 치고 줄라꼬. 얼마 안 된다. 문자로 계좌 남겨 놔라.”
‘평생 나한테는 만원 한 장도 아까워하던 양반이..’
‘이렇게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나는 전화를 끊고 괜히 속으로 툴툴댔다. 아빠는 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몇 달 뒤, 통장을 확인했을 때 찍힌 금액은 매달 오 만원이었다.
“아빠, 정원이 통장에 왜 매달 돈을 넣어요? 한 번 넣는 거 아녔어요?”
“뭐 그게 큰돈도 아닌데. 그냥 넣어 놔라.”
“노후 대비는 안 해요?”
아빠는 말없이 머리를 긁적였다. 고개를 숙이고 화투 패를 열심히 섞을 뿐이었다.
‘이 정씨 고집은 꺾을 수가 없어..’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에 비해 당시 육아휴직 급여는 쥐꼬리만 했다. 대구에서 얼른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했다. 아이가 돌이 채 되기 전에 나는 재취업을 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나는 직장에 있다 보니 아빠가 불쑥 낮에 찾아올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아빠와 교류가 적어졌다. 본가에 거의 매달 가기는 했지만 손녀를 보여주는 일 외에 다른 목적은 없었다. 이런 평화가 쭉 이어졌으면 싶었다.
낮에는 일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아이를 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퇴근길에 아빠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나도 모를 일이었다. 얼마 전에 아빠가 차 이야기를 한 게 생각나 알아본 참이었다.
“아빠, 전에 하이브리드 차 관심 있다고 했잖아요. 물어봤는데 아직도 대기가 길대요. 예약 걸어줄까요?”
이상하게 아빠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어....음...아니 괜찮다. 내가 지금 아파서... 다음에..”
“...? 어디가 아파요..?”
“배가 좀 아파.”
“병원은요?”
“아직 안 가봤어.”
“빨리 가봐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배가 딱딱해.. 병원 어디 가볼까..”
“일단 P병원 가봐요. 대구에서는 그래도 대학병원 못지않게 큰 곳이니까..”
“그래 좀 알아봐도..”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전화를 끊고 괜찮을 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병원 정보를 아빠에게 남겨놓고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어 꼭 병원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평소 병원이라면 끔찍이도 싫어하던 그였다. 평소에 아프다는 말을 잘 하지 않기도 했다. 그가 아프다고 하면 진짜 아픈 거였다.
며칠 뒤, 퇴근길에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바쁘제?.. 니 아는 병원 없나?”
“딱히 없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다. 왜 뭔일 있나?”
“아빠가...”
엄마가 머뭇거렸다.
“아빠가 암이라 안카나...”
“뭐라고?”
눈앞의 빨간 신호등과 함께 나는 브레이크를 꽉 밟았다.
‘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정신이 번쩍 들어 이성을 바로 잡고 차분해진 나는 엄마를 재촉했다.
“뭐라노. 자세히 말해봐요.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동네 병원에서.. 내시경을 했는데 위암이라네. 빨리 큰 병원 가보래..”
“하아.. 나도 한번 알아볼게.. 일단은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나는 이 말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그때는 몰랐다. 이 병 하나가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나에게 몰고 올 거대한 파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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