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낙동강2 - 대구광역시 중구
III.낙동강2 - 대구광역시 중구
2026.08.24
시메트릭·⌛14분

고등학교 2학년 학기가 시작되면서 친했던 친구들도 문과 또는 이과로 갈려 다른 반으로 배정됐다. 이과반 사이에서도 물리와 생물 중 선택으로 크게 나뉘고 같은 물리반 안에서도 화학과 지구과학으로 나뉘었다. 1학년 때는 진로와 성향의 구분 없이 한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떠들썩했지만,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선택 하나를 거친 뒤에는 문이과 반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물리와 화학을 선택한 우리 반은 비교적 조용한 애들이 많았다.

나의 모교에서는 내신성적과 전국모의고사 성적이 높은 학생 일부를 뽑아 심야자율학습반을 운영했다. 우리끼리는 편하게 심자반으로 불렀다. 최대 40명 정도로 운영되던 심자반에 같은 학반 31명 중 9명이 속했다. 심자반에 속했던 애들의 대부분은 수성구에서 사는 애들이었다. 학교가 있던 중구에서 수성구는 신천을 하나 건너가야 하지만, 심자반에서는 수성구에서 사는 학생들이 더 많이 보였다. 3월 모의고사가 끝난 뒤 다시 편성된 심자반에 나도 들어갔다. 심자가 끝나고 날씨도 선선하니까 친구들과 걸어가자고 말을 모았다.

우리 모두가 반월당을 지나 수성교 너머까지 다 같이 갈 거란 것에 의문이 없었던 것 같다. 바람은 여전히 찼지만, 이제는 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다리를 건너면서 우리는 2주 뒤면 떠날 수학여행과 대학입시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떠들썩하게 주고받았다. 문득 어느새 잎이 손바닥만하게 펴진 나무들이 신천을 따라 줄지어 있는 게 보였다. 벚꽃은 이미 지고 없었다. 벚꽃이 피었던 모습은 봤지만 벚꽃을 즐기진 못 했다.

한 명이 수학여행을 드디어 가본다고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 못 갔던 게 많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바쁘게 시간이 지나가고 있어서 의식하지 못 했다. 곧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수학여행 때 소주를 가져가겠다, 누군가는 타로카드를 몰래 숨겨서 가겠다. 각자 제주도에서 놀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밤 11시 30분이 살짝 넘어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N 채널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내가 도착한 걸 본 부모님은 내가 씻고 거실로 나오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정말 중요하다, 이번에는 평균 몇 등급까지 받아야 한다는 등 나의 입시 이야기로 운을 떼셨다. 압박감이 심했다. 1학년을 마치고 나서 부모님과 2등급이 찍힌 성적표로 많이 싸웠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부모님과 편안한 대화를 하기 힘들어져 갔다.

4월 13일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대구국제공항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며칠 전 주말에 친구와 농구를 하다가 다리 인대를 다친 채 제주도로 갔기 때문에 성산일출봉에 오르지 못 했다. 버스 옆에서 등산하기 싫다고 투덜대는 친구들이 일출봉을 오르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에코랜드에 도착했을 때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트와이스 멤버들이 화보 촬영하는 걸 직접 본 거였다. 모두가 트와이스를 한 번이라도 더 보겠다고 우글우글 몰려가 소리지르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수학여행이 끝나고부터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은 재빠르게 날아갔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6월 전국모의고사가 있었고, 그 다음 바로 기말고사가 있었다. 나는 정시보다는 수시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씩 교내 수학경시대회, 물리 동아리 활동, 대구광역시 단위 과학 대회도 끼어 있었다. 조금 지친 상태로 점심시간에 학교 창밖으로 하늘을 봤을 때가 7월 중순 한여름이었다. 당시 대구의 여름은 찌는 듯이 더웠다.

오랜 기간 하늘을 덮은 검은 먹구름은 비를 내리기는 커녕 대구의 하늘을 덮고만 있었다. 친구와 과학시간에 배운 지구의 복사평형을 떠올리며 이번 여름은 왜 이렇게 극도로 습하고 더운지 나름의 설명을 완성시켜갔다. 우리끼리의 결론은 대구의 분지 지형 위를 두꺼운 먹구름이 덮어버리면서 열이 빠져나가지 못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나는 대학은 반드시 대구 밖으로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내게 대구의 여름은 해가 지날수록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습하고 뜨거워져 갔다.

그러다가 하늘을 바라보던 친구와 나는 땅 위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문과반 애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이 날씨에 저렇게 뛰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여름방학이 다가와서 들뜬 기분도 잠시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서 자습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방학이 시작되기 직전 1학기 성적표가 손에 쥐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은 1등급을 받지 못 할거면 진로를 바꾸라는 압박을 하셨다. 꿋꿋이 물리학과로 진학할 것이라고 버텼지만, 버틸수록 정신적 압박은 심해져만 갔다.

방학이 시작하고 딱 1주일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학교에서 자습을 했다. 그리고 8월 중순에 2학기가 시작될 때가 되자, 3학년은 어떻게 버텨야 할지 두려움부터 들었다. 날은 여전히 습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덥기만 했다. 한 번씩 소나기가 내리긴 했지만 날씨가 이제는 도저히 평소와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에도 태풍은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았다. 땅 위에 누적되기만 하는 열은 도무지 빠져나갈 것 같지 않았다.

9월 모의고사를 치고나서 받은 성적표를 보고 목표한 점수가 안 나온 걸 보고 낙담해 있었다. 수시만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수능 준비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9월 12일, 몸이 안 좋아서 야자를 하지 않고 집에 온 날이었다.

어머니는 출장으로 늦게 집에 오신다고 했기 때문에 아버지만 집에 계셨다.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마자, 바깥에서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려서 반응도 하기 전에 집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실에 계시던 아버지는 건물이 흔들리는 걸 느끼자마자 화장실로 달려오셨다. 그리고는 화장실 문 바로 앞에 서있던 나를 팔로 감싸면서 밀어넣으셨다. 아버지 본인은 날 밀어 넣으시자마자 문고리를 붙잡고 거실을 뒤돌아보셨다. 다시 고요해지고 5분 정도 아무 일이 없자 우리는 다시 하던 일을 하러 돌아갔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서 학교 숙제를 했다. 그러나 몸이 찌뿌둥해질 때 쯤 거실로 나왔을 때 아까 전 지진과 다르게 더 크게 건물이 흔들렸다.

정신없이 학교 생활과 입시를 준비하느라 뉴스도 못 보고 살고 있었지만, 그 날은 뉴스속보가 올라오는 걸 보면서 KBS 9시 뉴스를 아버지와 함께 거실에서 시청했다. 지진이 끝나고 친구들과 괜찮냐는 안부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 후에도 뉴스는 쉴 틈 없이 중대한 소식들을 날랐다.

10월에는 JTBC에서 정부의 비선실세 뉴스를 날랐다. 평소 고등학교 친구끼리 정부의 잘잘못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피했다. 그러나 이번 뉴스가 전파된 후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잘못되었는지 토론하는 날이 많아졌다. 세월호 사고가 있은 후,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많아졌지만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던 대구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려면 주변 눈치를 많이 봐야 했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9월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 관련한 소식도 점차 입시를 치르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회자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은 우리들 사이에서 장난으로 소비될 정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에 장벽을 멕시코의 돈으로 짓겠다는 말에 우리들은 학교 매점 빵을 니 돈으로 사면 내가 받겠다는 식으로 비틀어 말하면서 웃는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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