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낙동강2-금강과 한강
III.낙동강2-금강과 한강
2026.08.31
시메트릭·⌛16분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은 여름방학보다는 일주일 더 길게 쉴 수 있었다. 2016년 12월을 넘기고 1월 중순이 되자 나와 같은 반 친구들은 EBS에서 출간한 수능특강 문제집을 들고 학교로 갔다. 겨울방학에도 고등학교 3학년 담당 선생님들은 수업을 하셔야 했다. 국어, 수학, 영어, 물리, 화학. 우리가 다음 학기용으로 받은 교과서는 원칙상 필요한 책일 뿐, 실제로 겨울방학 수업과 3학년 1학기 때 쓸 책은 EBS 학기 중에 나올 수능완성과 수능특강 뿐이었다.

2017년 1월, 이전 해 11월에 당선된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식을 친구들과 교실 프로젝터로 뉴스를 틀어놓고 같이 봤다. 교실 앞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세계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애들, 교실 중앙에는 문제집을 풀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연설을 듣고있다가 친구들의 토론에 가끔씩 참여하는 애들, 교실 뒷편에는 책상에 엎어져서 자는 애들과 태블릿PC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수능공부를 하는 애가 있었다. 1월의 공기가 칼에 베이듯 차가웠기 때문에 히터를 틀어도 교실은 따뜻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학년 1학기가 시작할 때에 우리는 한 명씩 담임선생님과 입시상담을 해야 했다. 노려볼 수 있는 대학교의 수준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언급된 대학들보다 한 단계 낮아져 있었다. 수도권 대학교들을 노려볼 수는 있지만 내 내신성적에서 한 등급 정도 상향 지원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그냥 집중해서 공부만 하면 잘 될 거라고 독려하셨다.

같은 달에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러나 지난 10월과 달리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못 했다. 사건의 파급력이 크고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지만 우리는 당장 눈앞에 펼쳐진 수능특강과 기출문제집을 푸는 일이 더 급했다.

5월 학교 운동회가 열릴 때 우리 3학년들은 학교 본관 꼭대기 층에서 창가에 기대서 1학년과 2학년 후배들이 응원하는 모습 그리고 학교 운동장을 내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3학년이 되고 교실이 바뀌었을 때는 가지만 있던 담쟁이덩굴이 이제는 넓은 잎사귀로 건물 벽을 거의 보이지 않게 덮고 있었다. 내가 1, 2 학년 때 운동회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건물에 갇혀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6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다시 담임선생님과 입시 상담을 했다. 이미 수시모집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만약 수도권 대학을 가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수능공부에 집중하라고 조언하셨다. 며칠 뒤에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특기자 전형에 지원해보라고 제안하셨다. 영어를 잘 하는 특기를 살려서 수도권 대학에 지원해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 대학 이름을 따라가고 싶진 않았다. 물리학과가 그 전형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됐지만 당연하게도 여름방학 때 일주일만 쉬고 우리는 학교로 갔다. 3학년 여름방학 때는 자습 뿐 아니라 담당 선생님들과 대학교 면접 연습도 진행했다. 자기소개서도 대학교 공통질문과 대학별 질문에 맞춰 적어 내려갔다. 9월에는 그렇게 준비한 자기소개서를 지원하고자 한 대학에 지원서와 함께 제출했다. 10월에는 1차 합격 결과가 나왔다.

3학년 2학기의 교실은 이제는 학교 같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면 스터디 카페에 좀 더 가깝다고 할 법했다. 선생님들은 들을 사람만 들으라면서 물리2, 화학2 수업을 진행했고 나를 포함한 일곱 명 정도만 관심을 갖고 수업을 들었고 나머지 반 친구들은 각자 수능 준비를 했다.

11월 15일, 학교에서 각자 수능시험장을 직접 둘러보라며 3학년 학생들을 오전 수업만 하고 모두 집으로 보냈다. 전날 핸드폰 충전을 못 하고 학교에 갔던 나는 중간에 방전된 핸드폰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경북고등학교로 향했다.

만촌네거리를 지나던 때에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민방위 훈련이라도 하나 싶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게 된 건 그날 밤이었다. 나는 다음 날이 수능이었기 때문에 일찍 침대에 들어가 자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후 10시에 나를 흔들어 깨우셨다.
„수능 일주일 연기됐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눈보라 속에서도 수능이 밀린 적이 없는데“
„거실로 나와서 뉴스 한 번 봐라“
내가 자전거를 타고 경북고등학교로 가던 딱 그 시간에 포항 지진이 일어났던 거였다. 사이렌 소리가 왜 울렸는지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소식을 늦게 접한 내가 폰을 들어보자, 고3 같은 반 친구들이 모여있던 단체톡방에서 탄식과 울분 섞인 문자가 난립하던 건 물론이고 친구 서너 명은 수능연기 소식 들었냐고 따로 문자를 보냈었다.

책을 잘 버리는 성격이 아니었던 나는 책장에 꽂아 뒀던 수능완성과 기출문제집을 챙겨 다음 날 학교에 갔지만 그 아침에 학교 건물 뒤편 쓰레기장에는 문제집을 몽땅 버렸던 고3 학생들이 줄지어 대형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원래 학교 등교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날도 고3 학생들은 오전에 자습만 하다가 귀가했다. 나와 친구 몇은 집 가기엔 시간 아까우니까 중앙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갔다.

그리고 오후 6시 각자 집에 갈 애들은 집에 갔고 수능 성적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나와 친구 세 명은 중앙도서관 앞 PC방에서 새로 나온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했다. 게임 속에서 총을 쏘면서 우리는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라면서 낄낄 웃었다. 전교 1등이었던 친구 한 명은 같이 게임을 하다가 오후 7시를 좀 넘어서 슬슬 정신 차리러 간다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11월 23일 수능 시험장에서는 떨지도 않았고 문제를 집중해서 풀지도 않았다. 원래 같으면 시험을 치고 있을 때 시간에 쫓기면서 지문을 빠르게 읽고 급하게 풀었겠지만 그날은 어떤 문제가 출제됐는지 구경하면서 여유를 부렸다.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멍하게 같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정시를 열심히 준비하던 친구들은 옆에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했는지 토론하고 있었지만 수시모집을 준비했던 나와 친구 몇 명은 수능날 점심 반찬으로 튀김은 별로인 것 같다면서 도시락 음식 이야기를 했다.

과학탐구 영역시험까지 다 끝나고 짐을 싸서 버스 정류장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바글거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을 때 눈이 내렸다. 눈은 내리면서 녹아 비처럼 떨어졌다. 두툼한 파카 위로 녹지 않은 눈송이가 떨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눈 결정을 뚫어져라 보았다. 겨우 이걸로 모든 학창시절이 끝이 났다는 허무함이 들었다.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수시모집 과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12월 첫 2주 사이에 부산, 대전 등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부산에서 면접 보는 날이 하필 단체 졸업사진을 찍는 날과 겹쳤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 앞 대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내가 합격한 대학교는 대구, 부산, 충청권 세 지역으로 정해졌다. 반드시 대구를 떠나겠다고 했던 것처럼 나는 부산도 물론 좋지만 서울이 더 가까운 충청권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충청권에는 연구단지도 조성되어 있는 만큼 충청권 대학이 가장 타당해 보였다.
다음 해 1월에는 신입생 OT를 위해 대학교를 방문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대학교까지 갔다. 처음은 아니지만 혼자서 대학교 캠퍼스를 둘러보는 건 느낌이 달랐다. 재수를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대학교로 진학한 친구들과 같은 시기에 같은 비슷한 삶을 살게 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신입생 OT가 끝나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사는 친척을 볼 겸 구경도 할 겸 서울로 향했다.

서울 지리를 하나도 몰랐지만 한강 강변공원을 가보고 싶었다. 그 당시 내게 서울에서의 삶을 대표하는 풍경은 한강공원이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큰 강 옆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풍경을 보는 게 내 로망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그런 풍경을 기대했지만 겨울에 한강에 바람이 그렇게 강하기 부는 걸 상상하지 못 했다. 그리고 2018년 1월, 내가 방문할 날 서울 기온은 영하 15도까지 내려갔다.

지리를 몰라서 지하철 역명만 보고 2호선 강변역에서 내려 한참을 떠돌다가 잠실대교를 두 발로 건넜다. 그렇게 도착한 한강공원에는 거세게 부는 찬바람 때문에 풍경을 보는 것은 고사하고 손과 귀가 얼어, 한강에 온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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