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독립의 죄책감
4화_독립의 죄책감
2026.06.25
가든·⌛10분

아빠를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마음 속 묵직한 돌덩이가 치워졌다. 동시에 아빠를 향한 미운 감정도 더 또렷해졌다. 그 무렵 직장도 쉴 틈 없이 바빠졌다. 밥 먹듯이 야근을 하던 터라 아빠와는 생사만 확인했다. 주말에 가끔 얼굴을 봐도 딱 필요한 말만 하고 다른 교류는 없었다.

일 년을 쉼 없이 달리느라 내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 엄마의 우울증이 재발했다. 가족에게는 알리지 못했지만 나도 그 해 여름부터 우울증이 왔던 터였다. 내 마음도, 엄마도 살필 겸 퇴사했다. 집에서 지내면서 내 마음 돌보기도 힘들었지만 엄마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려 애썼다. 엄마가 아프자 아빠는 내가 관련 공부를 좀 했다는 이유로 나와 모든 걸 상의했다. 약 복용부터 시작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나에게 물어봤다.
“야야, 니가 보기엔 엄마 좀 어떻노?”
“좀 나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좀 더 봐야 해요.”
“이제 좀 나아졌다 아이가? 약 아직 먹어야 하나?”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약은 의사랑 상의 없이 임의로 끊으면 안돼요.”
“...알긋다.”
그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꼬리를 내렸다.
아빠가 이런 걸 물어보면 나도 의사가 아닌데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지난번처럼 악화될까봐 아빠도 불안하겠지’, ‘못 배운 사람이니까 내가 이해해야 하나?’ 싶어 애잔한 마음이 들다가도 그보다 더 큰 피로감이 나를 덮쳤다. 이렇게 사소한 걸로 아빠와 다시 교류가 생기기 시작하자 불편한 감정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다시 취업을 해야 한다.’, ‘어서 집에서 탈출하자.’
내 마음이 쉴 새 없이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알아봐도 마땅하게 잘 나오지 않았고 지원서를 넣어도 연락이 없었다. 생활비는 떨어져가고 마음이 조급했다. 타 지역까지 시선을 넓혔다. 내가 해보지 않은 분야였지만 유사 직종이었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되면 말지 뭐. 굶기야 하겠어? 일단 낸다!’
매번 저지르는 스타일인 나답게 시원하게 지원했다. 며칠 뒤, 룰루랄라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서류 합격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를 끊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자 남자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러저러한데 사실은 타 지역이라 면접에 갈지 말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뭘 이런 걸로 고민을..?’이라는 눈빛을 보냈다.
“뭘 고민해? 가자!”
그의 단순하고 명쾌한 한마디는 아빠의 눈치를 보며 자라던 내 삶의 족쇄를 끊어내는 말 같았다. 그의 말이 방아쇠가 된 것 마냥 나는 그 길로 짐을 챙겨 이동했다.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다. 간절하지 않아서였을까, 면접을 망친 것 같았다.

‘대답을 이렇게 했어야 했나..’
면접 상황을 복기하며 난 또 자책했다. 그런데 나의 자책을 위로라도 하듯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믿기지가 않아서 한동안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타 지역인데 뒷날에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빠도 타 지역에 일을 가 있는 상황이라 터놓고 말할 어른이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꼭 가야긋나? 안 가면 안 되나?”
“왜 안 되는데?”
“너무 멀다카이. 고마 대구에서 다시 일자리 찾아봐라.”
대학을 가지 말라는 아빠에게서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올라왔다. 그렇다면 더더욱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표정으로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더 이상 말리지마. 기차표는 예매했어. 나 짐 싼다.”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엄마를 뒤로 하고 며칠 머물 짐을 쌌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난 참 겁도 없고 억척스럽기 짝이 없는 대구 아가씨였다. 나는 그렇게 첫 출근 전날 저녁 울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 괜히 ‘아빠에게 못할 짓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가긴 좀 그렇겠지..’
마치 야반도주를 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내 마음이 전해졌던 걸까,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무슨 일로 전화를 했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때 아니면 말 할 기회가 없겠다 싶어 통화 막바지에 내가 다급하게 말했던 기억은 난다.
“아빠, 근데 나 이제 울산 가요.”
“뭐 하러?”
“저번에 서류 넣은 거, 합격했어요.”
“알겠다.”
그는 아무 코멘트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타 지역으로 첫 출근을 하러 가는 딸에게 방은 구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묻는 다정함 같은 건 역시나 아빠의 사전에 없었다. 마치 내가 다리에서 주워 온 자식처럼 느껴졌다.
‘그럼 그렇지.. 뭘 기대했냐. 바보.’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설명은 해야 할 것 같아 그 길로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구는 일자리가 없고 여기가 연봉도 더 높고 어쩌고저쩌고…. 문자를 치면서도 ‘내가 이걸 왜 설명하고 있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는 게 당연한데, 난 그 당연한 일에서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며 내 안의 돌덩이를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가족을 버리는 나쁜 딸’이 되지 않기 위해 구구절절 핑계를 대고 있었다.

가족을 두고 왔다는 찝찝함도 잠시, 숙소에 눕자 해방감과 편안함이 밀려왔다. 여행 이외에 아무도 없는 내 공간은 처음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를 찾는 목소리도 없는 공간. 살면서 가져보지 못한 고요함이었다. 나는 그 날 첫 출근의 긴장감은 뒤로하고 생애 처음으로 마음 편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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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안녕하세요. 가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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