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파시그 강 - 마닐라와 한인사회
II.파시그 강 - 마닐라와 한인사회
2026.06.29
시메트릭·⌛16분

저녁 과외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누나를 따라 마닐라 한인회에서 발간하는 주간지를 구경했다. 주간지에는 한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것들이 빼곡하게 잡지 하나를 채웠다. 김치, 한국 물품 판매, 대리 배송 그리고 누나가 찾아내고 매번 내 눈앞에 들이밀었던 한인 성인노래방 광고까지. 겨우 초등학생 3학년이었던 내게 속옷만 입고 있는 여성의 사진은 요상한 사진에 불과했지만, 한 살 위 누나에게는 성적인 의미가 보였나 보다. 누나는 어차피 조금 더 크면 너도 이런 거 볼 거라면서 내 눈 앞에 들이밀면서 낄낄 웃었다.

내가 다녔던 사립학교와 국제학교에서 정말 많은 한국인 학생을 봤다. 대부분 마닐라에서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함께 온 친구들이었거나,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집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한 분만 따라 온 경우였다. 내 초등학교 친구들 중에는 한 명은 아버지께서 필리핀 축구팀 코치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고, 다른 친구는 어머니와 함께 유학와서 하숙집에 함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마침 친구의 어머니는 수학 선생님이어서 같은 하숙집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조건으로 월세도 탕감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이모께서 내 어머니와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숙집에 머무는 아이들과는 다른 경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은 이모와 함께 다른 분이 운영하는 하숙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하숙집 주인분이 이모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라고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다른 아이들이 생활하는 환경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이모는 나에게 여기는 애들 먹이는 쌀도 필리핀에서 재배하는 날아가는 쌀을 쓰고, 침대도 오래된 거 쓰는데 반면에 너는 필리핀에서 구할 수 있는 일본쌀과 좋은 잠자리에서 자고 있다고 스스로 자랑스럽듯 말씀하셨다. 이미 1년 이상 같이 지냈기에 이모댁 식구와도 가족과 다름 없다고 생각을 하던 내게 당장 답을 할 수 없는 감정을 들게 했다.

이모께서는 나와 누나가 머리카락을 잘라야 할 때마다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골목길 1층 상가에 자리 잡고 있는 미용실로 우리를 데려가셨다. 굳이 그 미용실만을 찾아간 이유는 미용사가 한인이기 때문이었다. 미용실 뿐 아니라 마닐라에서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의존했다. 골목 진 곳에 작게 자리 잡은 한인마트를 때때로 방문해서 서울우유를 사서 오고, 가끔 한국에서 수입한 빠삐코를 사주시기도 했다.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고를 수는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해소됐다.

또 집에서는 스카이TV라는 위성 통신 방송 서비스를 통해 한국에서 2주 전에 방영한 드라마와 예능 그리고 밤에는 한국에서는 1시간전에 방영했던 9시 뉴스를 시청했다. 2010년에는 여러모로 다사다난한 내용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중국과 일본이 해상에서 충돌했던 이야기, 천안함이 북한 어뢰로 침몰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연평도에 북한에서 쏜 미사일이 200발 이상 떨어졌다는 소식. 그때의 나는 천안함이 대잠소나의 부족한 성능으로 제때 북한 잠수함을 탐지하지 못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기장에 함수 소나를 발전시킨 새로운 천안함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연평도에 미사일이 떨어진 다음 날에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연평도에서 일어난 비극을 발표했다. 그때는 각 사건이 어떤 지정학적 의미를 지녔는지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 했다.

이모는 또 한국인이 운영하는 책 대출 서비스를 구독하셨다. 매주 책이 두 권씩 집에 배달됐다. 나와 누나는 월요일 아침에 통학하는 차 안에서 일요일까지 읽은 책의 독후감을 이모에게 설명해야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덕분에 참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당시에는 주중에는 하교한 직후부터 저녁7시까지 매일 영어학원 갔다가8시부터 9시까지는 과외선생님과 또 영어 공부를 하고 남은 시간에 학교 공부까지 해야 하는 일정 사이에 틈틈이 책 두 권을 읽어야 하는 일은 그야말로 마감을 앞둔 과제 같았다. 만약 책 한 권이 300페이지가 넘어가면 나와 누나는 일요일 하루 종일 그 책만 읽어야 했다.

이모께서 다른 가족분들과 함께 저녁약속이 있을 때에는 집에 남은 나와 누나는 필리핀인 가사도우미, 소위 아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아떼 두 명은 부엌 옆 좁은 단칸방에서 열악하게 지내야 했기 때문에 우리만 남은 때에 거실에 있는 TV를 볼 때가 가끔 있었다. 보통 이모께서 집에 있을 때에는 휴대용 dvd 플레이어로 영상을 감상했다. 이모 가족이 외출했을 때 한 번 dvd 플레이어로 그 당시 엄청 인기를 끌고 있던 레이디 가가의 포커페이스 뮤직 비디오를 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파란색 쫄쫄이 수영복만 입고 수영장에서 기어가는 레이디 가가의 모습은 정말 난해했다.

이모께서 하교시간에 우리를 데리러 오지 못 한 때에 아떼 혼자 우리를 데리러 온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일반 필리핀 사람들과 똑같이 지프니를 타고 귀가한 날이었다. 항상 차를 타고 지나온 집과 집 사이 좁은 길을 처음으로 걸어갔다. 어울리지 않는 희멀건 노란색 페인트가 시멘트 담장을 꾸미고 있었다. 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놓인 집도 있었고, 뾰족한 날이 달린 금속 울타리가 시멘트 벽 위에 놓인 집도 있었다. 집 내부 정원에 심긴 망고나무들이 담장보다 높게 자라 도로 쪽으로 그늘을 드리웠다. 우리는 차와 햇볕을 피해 그늘진 담장 쪽으로 일렬로 걸어갔다.

20분 정도 걸었을 때,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철제 울타리 사이로 우리 학교의 교실의 5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방에 아이들 서른 명 이상이 좁은 공간에서 따갈로그어로 떠들고 있었다.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그 많은 애들이 있는 걸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와 누나는 여기가 뭐하는 곳이길래 질서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애들은 엄청 시끄럽게 떠드는데 지도하는 선생님도 없냐고 이야기했다. 아떼는 저기가 공립 초등학교라고 알려줬다. 우리 학교가 일반적인 필리핀 학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공립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는데, 아떼는 자기가 자란 지역에는 이보다 더 열악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조금 더 걸어서 큰 길 쪽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낯설지 않은 길목이 보였다. 하얀색으로 칠한 담장을 가진 집과 높은 건물 사이 좁은 길 끝에는 큰 도로가 있었다. 여러 대의 오토바이와 지프니가 요란한 배기음을 내면서 신호등이 없는 도로 위를 질주했다.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장식된 지프니는 각자 저마다 다른 그림을 걸고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도로 위를 달렸다. 누나는 간혹 선정적인 그림을 걸고 달리는 지프니를 보면 나보고 저기 보라고 가리켰고 아떼는 집 가는 방향의 지프니를 잡으려고 우리의 책가방을 어깨에 하나씩 맨 채 손을 허공에 휘적였다.

지프니를 기다리고 있을 때, 집에서 일했던 예전 가사도우미를 마주쳤다. 우리가 이모댁에 처음 왔을 때 일하고 있던 가사도우미였기 때문에 나와 누나는 오랜만이라고 인사했다. 우리는 이모가 왜 이 가사도우미를 쫓아냈는지 알지 못 했다. 쫓겨난 가사도우미는 아떼에게 따갈로그어로 무언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아떼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집에 가야한다고 말을 할 뿐이었다. 쫓겨난 가사도우미는 우리와 함께 지프니를 탔다.

비좁은 지프니 좌석에 모두가 어깨를 맞닿은 채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렸다. 항상 지나치던 고가도로 아래 쪽에서 지프니를 갈아타야 했다. 예전 가사도우미도 우리를 따라 내렸다. 아떼와 더 대화를 하더니 자기는 여기서 반대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나와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오후 4시에 내리꽂는 태양빛과 눈 앞 시야를 가리고 있는 고가도로 그리고 내 뒤로 서있던 누르스름한 고층 건물이 기억난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던 것인지 그 순간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학원 갈 준비를 했다. 오후 9시가 되어서야 이모가 집에 돌아오셨고, 우리는 낮에 있던 일을 이모에게 이야기했다. 이모는 크게 분노하셨다. 우리에게 안심하라며 조치를 취하겠다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아떼에게는 고맙다고 500 페소를 쥐어줬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그때에도 한국인들이 필리핀 길거리에서 납치 당하거나 살해되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주간지에 올랐었다. 단지, 그때 우리가 겪었던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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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트릭
안녕하세요. 시메트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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