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렸다. 뾰족뾰족.
어려운 주제다. 빙글빙글. 한참을 의자에 앉아 커서가 깜빡거리는 것만 보고 있었다. 얽어놓은 팔은 풀릴 줄을 모르고, 스르륵 키보드에 손을 가져다대면 파드득하고 튕겨나왔다.
생각을 한참이나 했다.
똑
딱
똑
딱
.
.
.
손톱을 틱틱 뜯었다. 까스래기가 생긴 손톱 끝은 붉게 달아올라 조만간 피가 퐁,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뭐가 그렇게 조급한 건지. 참.
늘 이런 식이었다.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토마토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꺼내려 하면 꾹꾹 눌린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릴까 봐 겁이 났다.
사랑은 유독 어려웠다. 사랑이 뭐라고!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너무 흔하게 사용되었고, 그래서 오히려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친구를 향한 마음도 사랑이라고 하고, 부모를 향한 마음도 사랑이라고 하고, 좋아하는 일을 오래 붙들고 있는 마음도 사랑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미움의 반대말로, 누군가는 행복의 다른 이름으로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사랑 말고는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
애정, 호감?
…
몇 번이고 다른 단어들을 입안에서 굴려보았지만 결국 도착하는 곳은 사랑이었다. 너무 커서 담아낼 수 없고, 너무 흔해서 진부해 보이는데도 그 말밖에는 할 수 없는 마음. 어쩌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정확해서가 아니라, 다른 말로는 부족해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 단어를 한 사람에게 건네버렸다.
그
리
고
.
.
.
툭. …퍽.
너라는 토마토에게.
그래서였을까. 그 뒤로 나는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토마토에 빠지게 된 건 사실 건강하게 살기 위한 방안이었다. 한동안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살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조차 흐릿했다. 설탕물에 오래 절여진 토마토처럼 물러져 있었다.
나는 늘 주변의 말에 쉽게 흔들렸다. 이 풀잎이 이렇다 하면 그런가 보다 했고, 저 꽃이 저렇다 하면 또 그런가 보다 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토마토 같았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갑자기 도시락이라니.
잘 살고 있는 사람인 척 연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딸기와 바나나 그리고 토마토.
도시락을 찍겠다고 서랍장을 열고 휴대전화를 고정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화면에는 갈색 도마와 빨간 토마토, 그리고 연두색 도시락통이 담겼다. 도각도각 여덟등분이나 내서, 설탕이랑 올리고당을 뿌려댔다. (달달한걸 정말 좋아하는 편이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야 생각했다.
예쁘다.
정말 별것 아닌 건데도 이상하게 예뻤다.
그때 처음으로 토마토를 바라봤다.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모양으로. 하나의 색으로. 그리고 어쩌면 나와 조금 닮은 존재로.
그래, 글쎄. 이제는 내 뿌리가 필요할지도. 단단하게 박혀있는 내 심지가 필요할지도.
누군가에게 건네버린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도 한 번쯤은 스스로 자라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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