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댁네 이야기 : 「주마등」이 불러낸 기억들
가례댁네 이야기 : 「주마등」이 불러낸 기억들
2026.07.21
아이바·⌛8분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처음 맞는 추석이었다. 명절이 가까워지니 할머니가 더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몇 달 전 썼던 글이 다시 생각났다.

때는 장례를 마치고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온, 경조사 휴가의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얼른 씻고 기절에 가까운 잠을 자야 했다. 며칠간 제대로 자본 적 없이 새벽마다 차 안에서 잠깐 눈 붙이는 게 전부였으니, 본능은 당연하게도 내 몸을 침대로 이끌었다.

하지만 잘 수가 없었다. 자면 안 됐다. 이대로 눈 감았다 뜨면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밀린 일을 처리해야 했을 텐데, 내일의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고 머릿속에 수없이 솟구치는 생각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원치 않는 타이밍에 적절치 않은 표현으로 나올 게 분명했다. 정리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비일상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의도적 의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돌아가시기 전날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뵙고 왔던 일부터,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머릿속을 스치던 기억,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느꼈던 것들까지 최대한 흘려보내지 않고 몇 시간에 걸쳐 언어로 풀어냈다. 그렇게 「주마등」을 쓰며 마음을 조금 추스를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를 위로하고 싶어 할머니를 생각하며 쓴 글이라며 보냈다. 엄마는 그 글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 이야기를 외삼촌과 이모들에게 보여줘도 되겠냐고 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러웠지만 어른들께 위로가 된다면야, 흔쾌히 그러시라고 했다.

그렇게 외가 단톡방에 내 글이 공유되었고, 그 뒤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어른들에게도 그 글이 무언가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한 사람씩 글을 써서 공유하기 시작했고 사진도 하나둘씩 올라왔다. 평범한 단톡방은 어느새 각자 기억하는 엄마를 이야기하는 채팅방이 되었다.

그러다 책을 만들어 49재 때 할머니께 바치자는 얘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진 게 아닌가 싶었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다들 각자 할 일을 나눠 맡았다. 글을 모으고, 사진을 고르고,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마침내 책이 완성되었다. 제목은 『가례댁네 이야기』. 가례에서 시집온 할머니를 사람들은 가례댁이라 불렀다. 한 사람을 부르던 이름이, 그 사람을 기억하는 모두의 이야기를 담은 제목이 되었다.

49재 날, 가족들은 책을 한 권씩 나눠 가졌다. 그리고 할머니 옷을 태우며 책 한 권도 함께 올려 보냈다. 책 서문에 쓴 것처럼, 당신이 떠난 뒤에도 우리는 당신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을 담아서.

처음에는 그저 내 마음을 추스르려고 쓴 글이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고,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책이 되었다. 글 하나가 책이 되었다는 건, 내가 꺼낸 기억 하나가 다른 사람 안에 있던 기억까지 건드렸다는 뜻이었다. 「주마등」은 나 혼자 붙잡고 있던 애도였는데, 어느새 가족들 사이로 번져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중1 여름, 엄마의 정수리를 처음 내려다본 뒤로 나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게 지킨다는 건 강해지는 일이었다. 무거운 짐을 대신 들고, 앞에 서서 무언가를 막아내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엄마의 슬픔을 없애줄 수도, 할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나의 할머니를, 엄마의 엄마를 함께 기억할 수는 있었다. 엄마 혼자 품고 있던 기억을 같이 꺼내고, 가족들의 기억이 머물 자리를 만들 수는 있었다. 그것도 엄마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엄마가 슬픔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되도록, 우리도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가례댁네 이야기』는 할머니께 바친 책이면서, 엄마를 위한 작은 주머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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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바
안녕하세요. 아이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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