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큰 울림
말보다 큰 울림
2025.12.01
은·⌛14분

모든 게 처음이던 때, 첫 직장에서 처음 사회인으로써 책임의 무게를 함께했던 친구를 만났다. 그 땐 많고 적은 나이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부터 한 문장을 뱉는 것까지 뭐가 그리 다 무겁고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우물쭈물하다 그래도 용기 내어 뱉은 한 마디는 표정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 현실에서는 그리 기껍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던 것 같다. 속이 텅 빈지도 모르고 둥글게 부푼 풍선처럼 말랑하게 꾸었던 꿈은 차가운 말, 뜨거운 시선에 한순간 터져버려 힘없는 조각으로 떨어졌다. 찢어질 때 나던 펑 소리가 잔상에 남아 계속 귓가에서 울렸다. 그래서 그 조각을 어떻게 이어 붙일지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한 숨 불어넣으면 다시 부풀 수 있었단 것은 까맣게 잊을 만큼 형체를 잃어버린 조각들이 길을 찾지 못하고 마음 안에서 이리저리 휘날렸다.

“네 풍선도 터졌어?”
“내 것도 터졌어.”
서로의 터진 풍선 조각들을 매만지며 씁쓸하게 웃던 우리.
“날기도 전에 터져버렸네.”
“응, 훨훨 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숨을 불어보자하는 내 말에 친구는 머뭇거렸다. 분명 훨훨 날아가는 풍선을 불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디 부딪히면 터질까 날리지도 못하고, 불면 터질까 불지도 못했던 것 같다. 풍선을 터지지 않게 날릴 수 있는 넓은 잔디밭을 찾던 나. 언제 터져버릴지 모를 풍선은 품고 있기가 벅찼는지, 친구는 좀 더 단단하게 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길로 갔다.

몇 년 뒤, 나는 제주에 있었다. 대평리 작은 마을 소소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일을 잠시 하던 때다. 제주에 있다고 하니, 친구는 주말이 되자 한달음에 내려 왔다. 무명서점을 다녀오며 우린 해가 질 때까지 종이가 전해주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책방 냄새, 책 넘기는 소리, 그 속의 문장, 일기장, 일기 쓰는 소리, 편지, 그 속에 우리의 언어.

친구는 그런 종이들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여전히 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종이로 접은 비행기를 품은 마음이었을까. 날고 싶은 마음을 싣고 날아줄 터지진 않는 무언가를 찾은 걸까. 풍선은 터져버린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애써 찾은 친구의 종이 비행기가 혹시 비에 젖진 않을까, 찢어지진 않을까 걱정했다. 분명 많이 단단해졌다고 말하던 친구는 몇 자 되지 않는 내 편지에 미소와 글썽이던 눈으로 답했다.

몇 년 뒤, 결혼 소식을 전한 친구. 참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많이 지쳐있었다.

삶은 조금 굳어진 듯 싶은 마음밭에 다시금 비를 내린다. 또 다른 일과 관계, 결혼 같은 더 큰 무게에 짓눌리고 있는 중이었다. 함께했던 제주 이야기를 꺼냈다. 잔잔히 파도치던 바다 그 일렁임 위에 쌓이던 눈. 맑은 하늘과 초록 돌담집 그런 푸르른 것들을 떠올리며 조금 밝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참 이야기하며 웃던 친구는 20번 정도 접혔던 마음이 한 페이지 씩 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잊고 지내던 것들이 피어오르는 기분이라는 말과 함께. 생각했다. A4용지도 7번까지 밖에 못 접는다는데. 꼬깃꼬깃 접혀졌구나. 비행기가 날지 못했구나. 얼마나 마음을 접고들 살아가는 걸까. 왜 그렇게 구겨지며 살게 될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요즘 숨 쉴 구멍은 어디냐고 물었다. 친구는 ‘일기’라고 답했다. 아까 9시쯤 대화 도중 울렸던 알람이 일기 알람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언젠가 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이 떠올랐다.

마음이 설명할 길 없이 너무 복잡할 때, 끝없이 우울의 늪으로 빠질 때, 자신을 건져 올려줬던 건 꼭 내 마음 같은 책의 문장이었는데, 어느 그런 날, 책을 읽는데 ‘나 이제 이걸로도 안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고 했다. ‘이제 어떡하지. 영원히 못 올라오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고. 그런 힘든 마음을 마주 보며 일기장에 마구 털어 놓다 보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고, 정리가 되고, 그러다 사라질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아무한테도 보여 줄 수 없고, 죽을 때 꼭 태워버려야 한다며 같이 웃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0시가 되었는지 나에게도 *모각글 알람이 울린다. 나한테도 글쓰기 알람이 있다며 친구와 마주 보고 웃었다. 요즘 밤 10시만 되면 울리는 내 글쓰기 알람. 오늘도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친구에게 물었다.

“그래서 알람이 울리면 요즘도 일기를 써?”
“요즘 너무 바빠서 안 쓴지 꽤 됐어.”
“그런데 알람이 계속 울리면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진 않아? 난 꽤나 스트레스라.”

그 때 친구의 대답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든든해. 내가 여기 있어. 잊지 마. 살다가 힘들 때,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을 때 여기로 오면 돼. 그렇게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아서.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일기장을 펼치면 되니까. 알람이 울리기만 해도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랄까.“

나에게도 일기가 숨구멍이던 때가 있었다. 20대 초반 즈음, 나조차 감히 다시 보지도 못할 만큼 감정적으로 쏟아내던 때. 막 쏟아 내다보면 어느덧 잠잠해져 있는 마음. 몇 년이 지나고서 그 일기장을 다시 펴 볼 용기가 나 한 번 펴 본 적이 있었다. 틀렸다. 밉다. 싫다. 뭐 이런 부정의 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뭐 저렇게까지 힘들었나 싶었다. 한참 들여다보다 그렇게 몇 년을 쓴 여러 권의 일기장을 한 번에 모아 어딘가에 넣어두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찾아보려 지금 집을 한 시간 반째 뒤지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못 찾겠다. 꼭. 반드시 태워 버려야 하니 내 손 닿는 곳에, 내 방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노트들이 이젠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리니 일종의 해방감이 들었다.

와. 내가 일기장을 어디 뒀는지 모르다니. 말도 안 돼.

그만큼 이제 그런 감정들이 말끔히 휘발된 듯 나에겐 중요하지 않아 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난 더 이상 온 마음을 쏟아내는 일기는 쓰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는 그렇게 쓰라고 해도 못 쓸 것 같다. 친구의 대답을 떠올리며 나에게도 숨구멍이라 생각했던 일기가 그저 그럴 때,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친구의 일기장 속에는 더 깊고 진심인 이야기들이 가득하겠구나. 여전히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은 지금도 늘 깊고 진심인 마음으로 살아가는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시끄럽게만 들렸던 내 10시 글쓰기 알람을 떠올려본다. 알람이 울릴 때마다 언제나 든든한 마음이 들려면 나는 무엇을 두어야 할까. 구겨진 마음의 숨구멍.

밤하늘을 보는 것. 10시면 내 방 창에 달이 보이는 시간이다. 그걸로 정해야겠다. 복잡한 마음이 들 때, 세상에 혼자인 남겨진 것 같을 때, 내가 제대로 걷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 무언가 아주 많이 두려울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빛이 비춘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보일 때도 보이지 않을 때도 그 곳에 달과 그 너머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사실이 나에겐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위로가 된다. 친구에게 일기장이 여전히 곁에서 알람을 울려주고 있어 다행이다. 오래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곤 밤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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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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