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에 머무는 것들
손안에 머무는 것들
2025.11.08
모몽·⌛7분

바쁜 일상 속에서 ‘낭만’은 비효율적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낡은 단어처럼 느껴진다.
감상적이고, 사치스러운 감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문득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리틀 포레스트>.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주인공은 계절마다 음식을 만들며 말한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아 있구나.”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낭만은 특별하거나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삶을 느끼는 순간, 그게 낭만일 수 있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른 기억들,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목욕 후 먹는 풀빵, 엄마의 꽃 과자, 아빠가 만든 이상한 볶음밥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 위에도 있었다.
걸어서 30분. 아이의 걸음으로는, 세상을 배우기에 딱 좋은 시간. 땡볕 아래 그늘 하나 없던 길에서 나는 자주 지쳐 돌바닥에 퍼질러 앉았고, 언니는 늘 조용히 내 옆에 앉아 물었다.
“잠자리 잡아줄까?”

손 위에 조심스레 내려앉은 잠자리.
날개 끝이 손등을 간질일 때, 여름이 내 안에 머무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놀이가 있었다. 무당벌레를 잡고, 풀잎으로 팔찌를 만들고, 비 오는 날엔 물길을 내 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꽃잎을 띄웠다.
배처럼 떠다니는, 작은 우리만의 세계.

모든 존재가 여름의 일부가 되던 순간, 사랑은 자연스레 우리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 동네 뒷산에서 반딧불이를 처음 보았다.
형광빛이 어둠 속을 유영하듯 떠다녔다. 나는 숨을 죽이고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빛 하나가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을 때, 별을 잡은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이 주밖에 살지 못한다는 그 반딧불이에게 나는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먼저 날아가, 내 소원의 길을 열어달라며.

하지만 반딧불이는 한참을 내 손에서 머물렀다.
그땐 몰랐다. 진짜 사랑은,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곁에 있는 것이라는걸.
그날 밤, 어쩌면 인생 전체를 비춘 가장 조용한 순간이 내 손바닥 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겨울이면, 주말마다 늘 함께 목욕탕에 갔다.
빨개진 귀, 고구마처럼 불은 손. 김이 나는 풀빵을 하나씩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눈이 내리면, 웃음은 하얀 눈 위에 포개졌고 우리는 솜이불 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눴다.

그리고 아빠는 때때로 괴상한 요리를 내놓았다. 딸기 김치볶음밥, 뜨거운 양파 비빔면 같은 것들. 우리가 인상을 찌푸리면, 아빠는 익숙한 농담을 던졌다.
“안 먹으면 다 내 거!”

엄마는 식빵을 도려내 피자를 만들고, 조청을 발라 꼬아 만든 꽃 과자를 내주었다.
맛보다 진심이 먼저였던 식탁.
그 괴상한 음식과 꽃 과자에 그 시절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제 우리 곁에 아빠는 없다.
아빠 없는 밥상, 아빠 없는 농담.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빠의 음식은 여전히 내 혀끝에 남아 있다.

언니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 아이의 손을 잡는다.
잠자리를 조심스레 올려주고, 돌바닥에 주저앉은 아이의 곁을 지킨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케이크를 굽고, 엄마의 꽃 과자를 흉내 낸다. 맛은 중요하지 않다. 아빠는 오래전, 이미 그걸 가르쳐 주었다.

기억이 손끝으로 이어지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마음을 만들고 진심을 빚는다.

진심은 날지 않는다.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빛이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다시 비추는 등불이 된다.

시리즈 전체보기
author
모몽
안녕하세요. 모몽입니다.
작성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