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보통 첫째 딸이 아빠를 닮는다 하던데 우리 집은 반대였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를 닮은 것도 아니였기 때문에 친가에선 내가 아빠의 무엇을 닮았는지를 늘 궁금해했다.
궁금증은 머지 않아 풀렸다. 돌잡이 때 펜을 잡았다. 기뻐 웃는 아버지의 젊은 초상을 훗날 사진으로 목격했다. 까막눈이던 아기는 그림책보다 글자책을 더 좋아했으며 한글을 깨우치고 나서는 일찍 활자중독을 앓았다. 어린 부모는 어렵게 찾아온 아이를 위해 거실 한 쪽 벽면을 높은 책장으로 덮었다. 그 자리를 세계 문학 전집이 꽉 채운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태어난 90년대는 딱히 ‘딸바보’라 일컫는 문화가 없던 시대로, 특히 ‘부산 사나이’가 육아에 나서는 건 퍽 놀라운 일에 속했다.
그러나 어릴 적 사진엔 갓난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부산 사나이의 사진이 유독 많다. 아마 아버지는 내가 그와 가장 닮아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비춰 봤을지도. 아빠가 소년일 적 가졌던 시인의 꿈을.
고등학생때 숙명에 대한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노래로 업을 이어가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하는 남자였고, 그의 재능은 그의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었다.
그 시절의 꼬맹이는 비극을 좋아해서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아버지가 죽던 날 눈이 내렸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던 날도 눈이 내렸다.’
남자는 노래로 업을 이어 가지만 늘 딜레마에 휩싸인다. 작은 집에서 들을 순 있지만 벙어리가 되어버린 친모와 함께 사는데, 그녀가 보는 것이 자신인지 아님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그의 아버지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종의 이유로 노래 부르기를 그만 두고 늘 어깨에 지고 다니던 기타를 작은 집에 버려둔 채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몇 년 후, 그가 남겨 뒀던 어린 소년이 그 기타와 함께 남자를 찾아온다. 남자는 방파제 위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훌쩍 커버린 소년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깨닫고 마는 것이다. 손으로 막으려 해도 바다처럼 밀려 들어오는 그들의 숙명을.
소설을 마친 날이었다. 시인을 꿈 꾸던 소년의 딸이 열 아홉이 되던 해이기도 했다. 상기된 얼굴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나 문창과에 가고싶어.
그러나 아버지는 반대했다.
더 좋은 길이 있을거라 말했다. 현실은 이미 아버지가 겪은 바 있듯 녹록치 않았고 가장이 된 소년은 당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다만 바랐던 것이다.
이제 아버지도, 나도 문학과 하등 상관 없는 궤도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글자수와 무관히 돈을 번다. 대신 계산기로 두들겨낸 숫자들이 그와 나의 삶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아버지를 원망한 적 없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시인을 그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 태어나 눈을 좋아 했다. 아쉽게도 부산에는 눈이 오지 않아서, 7살이 되도록 눈을 본 적이 없었다. 대신 겨울이 오면 매일 물었다.
눈은 언제 와?
눈 오면 좋겠다, 내 생일 선물로!
그리고 무슨 맛이 날지도 궁금해-.
조금 투정 부리듯 말하자 아버지는 내 코 끝을 가볍게 꼬집었다.
내 출근한데이.
늘 그렇듯 아버지가 먼저 현관을 나섰다. 무채색의 양복, 날 선 재킷의 어깨, 종이 서류로 가득 찬 네모난 가죽 가방.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모든 게 어제와 같았다. 배웅을 마치고 TV를 켰다. 하얀 서울이 브라운관에 송출되고 있었다.
깜빡 든 선잠을 전화 벨소리가 깨웠다. 수화기 너머의 아버지와 전화를 하는 엄마가 보였다. 곧 통화를 끝낸 엄마가 레스토랑에 가지 않겠냐 했다. 기쁜 마음에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기차 레스토랑이지!
무뚝뚝했던 당신이지만 늘 나를 어여삐 여겼단 것을 알았다. 멋쟁이던 엄마가 내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시켜도 그저 허허, 웃던 어린 아버지. 주말마다 멀리 떠나 보여줬던 많은 숲과 바다, 그리고 연신 나를 따라다니던 카메라의 셔터 소리를 알고 있었다. 카메라 뒤에 가려진 당신의 웃는 얼굴도.
그 레스토랑도 당신이 나를 어여삐 여겼던 순간 중 하나였다. 기차를 개조해 만든 테마 식당이었는데, 아버지가 먼저 알아 데려 갔다. 가히 로맨티스트였다. 어린 나는 유독 그 곳을 좋아했다.
아니, 아버지의 손을 잡으면 늘 좋은 곳에 갈 수 있었다.
스프와 스파게티를 저녁으로 먹고 다시 차에 탔다. 아버지는 낯선 길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깜빡 잠이 들었던 나를 엄마가 상냥한 손길로 깨워 채근했다. 열린 차문 새로 차가운 겨울 공기가 볼을 간지럽혔다. 눈을 뜨자 정장 차림으로 서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그리고.
은진아. 눈이다. 일로 온나.
아버지 밑에 쌓여 있는 야트막한 눈밭.
당장 뛰쳐나가 송아지마냥 눈 위를 뛰어 다니며 푹푹, 눈을 밟았다. 신기해서 그랬다. 처음 밟아 보던 눈에서는 뽀득이는 소리가 나서.
소리 틈새로 아버지가 나지막히 말했다.
눈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니.
출퇴근길에 운 좋게 발견 했다고.
딱 여기에만 눈이 녹지 않고 있어서 우리 딸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데려왔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아빠가 눈 더 많이 보여줄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 뒤로도 오래오래.
삶을 돌이켜 볼때 누구나 기억의 첫 시작점이 존재할테다. 내 기억의 출발점은 동생이 태어나던 날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내 기억의 시작은 아버지가 보여준 작은 눈밭과 하얀 약속. 아버지가 건네준 선물로 내 삶의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을 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어린 소년은 꿈을 이루었다. 눈밭을 선물해주었던 나의 아버지. 그리고 그가 눈밭 위에 서서, 나에게 들려준 말은 내 생애 가장 위대한 문장이었으니.
시인의 딸로 태어나 행운이다. 그날의 약속이 내 생의 시가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시 아래 적히는 문장을 고민하며 살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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