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낭만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꼭 낭만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2025.11.08
우디·⌛7분

단 한번도 낭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멋진 풍경을 보고, 또는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때도, 지난 시절들을 되돌아 볼때도…‘낭만’이란 단어는 쉽게 떠올리기 힘들었다. 기쁘다, 멋지다, 예쁘다, 아름답다 ,그땐 그랬지 등등이 ‘낭만’이란 자리를 대신해서 내 입술에서 튀어나왔다.
’낭만‘이라는 친숙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두 글자, 언제부터 낭만을 잃어버렸을까? 아니, 애초에 잃어버렸다 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른다고 한다.
지난 시절 그 시기의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도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잊고 지금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말일 거다.
개구리로 성장한게 당연하다는 듯 올챙이적 시절을 잊고 지낸다. 개구리들은 옆의 올챙이들을 보면서 ‘낭만적이다’ 라고 생각을 할까? 아니면 폴짝폴짝 멀리 뛸 수 있는 지금에 만족을 할까?

나의 현재는 어떤가. 시간에 치여 살기위해서 필요한 돈을 충족시키기 위해 원치않는 웃음을 지으며 낭만 타령 하는 사람들이 ‘한가해 보이네‘싶은…성장한 개구리가 되었는데 왜 낭만적이지 않은 걸까.
낭만은 어쩌면 꿈일까??? 올챙이의 꿈은 개구리니까 꿈을 이루면 사라져 버리는걸까?
나는 그럼 꿈을 이뤘나? 그렇지 않은데…꿈과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사는데 낭만이란 꿈을 잃어도, 꿈을 이루어도 없어져버리는 거구나.

지극히 현실만을 살아가는 개구리. 그리고 나.
달리는 기차에 낭만을 찾을 수 있지만 달리는 지하철의 낭만을 찾으라고 한다면 어떨까?
똑같이 바퀴가 달린 길쭉한 것인데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른 걸까?
내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기차는 여행이지만 지하철은 출퇴근 지옥인데. 물론 지하철에서 낭만을 느꼈던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것은 아마 과거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것을 향한 애틋함 아닐까?

생각하면 항상 낭만은 이제는 이룰 수 없거나 되돌아갈 수 없는 것들에게서 찾아오는 향수 같은 느낌인 듯 하다. 아니면 저 머나먼 미래에서 찾아오길 기다리는 희망같은 거랄까?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자동차 일 수 있겠다.

먼곳의 어딘가를 상상하며 그 곳으로 가는 모든 길들이 낭만이라면, 낭만을 잃은 사람들은 길을 잃은 방랑자일 수 있겠구나.

그렇다고 방랑자들을 불쌍하다 생각할 수 있을까? 저마다 한가지씩은 ‘나도 나만의 자동차가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걸 무시해버린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모두가 살아간다. 저마다의 발자취를 남기며, 먼 길을 향해 나아간다. 지난 발자취를 보며 ’그땐
그랬지‘ 하며 생각을 하기도 하고, 길을 걷다 비를 만날수도, 뜨거운 태양을 만날수도 있다. 뜨거운 태양이 반가울때도, 비가 반가울때도 있을테고 둘 다 싫다 바람만 다오 라고 말할 수도 있을거다.
도착지만 바라보며 걷는길이 멀게만 느껴질수도 가깝게 느껴질수도 있을지 모른다. 아니지, 도착점에 갔는데 사실 도착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산정상을 올라갔더니 더 큰산이 있더라. 우리나라는 한라산이 높은데 저 먼나라에 비교도 하지 못할 엄청 큰 산이 있더라. 끝인줄 알았는데 끝난게 아니더라.
그러니 한라산으로 가는길만 생각하지 말고. 한발 한발에 발자취가 남을테니 한걸음 한걸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낭만’ 이 아닐까 한다.
방랑자이든 목적지가 뚜렷한 사람이든 개구리든 기차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뭐가 되었든 ‘지금’이 지나가면 추억일테고 먼 미래로 이어져있는 시간일테니
지금 이순간에 태양을 만나든 바람을 만나든 비를 만나든 그 속의 좋은 것들만 보기로 하자. 지나가면 모두가 낭만일테니. 낭만이 꼭 아름답고 좋아야 낭만있었다 라고 하지 않을테니까. 낭만이란 우물안에 가둬두는 개구리가 될 필요는 없다. 그래 꼭 ‘낭만’ 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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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안녕하세요. 우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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