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는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가는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25.11.08
알밤·⌛12분

낭만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삶을 낭만적인 삶이라고 할까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당신은 낭만을 정의할 수 있나요?

삼 남매의 서러운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는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언니가, 아래로는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귀여운 남동생이 있었죠. 둘째로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은 그 설움을 아마 평생 알 수 없을 겁니다. 딸 딸 아 집안의 둘째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요.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차별적인 사랑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만, 친척들로부터 "언니만큼만 해라. 넌 그럼 성공할 거야"이런 식의 이야기를 어린 시절 내내 듣고 자랐습니다. 그 말은 저의 양분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땐 '언니만 못한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바짝 마르게도 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언니처럼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까요? 저는 달랐습니다. 소심한 반항심이 생겼습니다. 언니가 될 수 없다면 언니만큼 하기 싫어졌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조금 부정적이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공부라는 수단에 딱히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잘 할 수 없었습니다. 공부보다는 내가 잘하는 다른 것들이 좋았습니다. 그림을 즐기고, 손으로 만드는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저는 한 번도 '하고 싶은 것'을 당당히 요구한 적이 없었기에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대개 제가 만나본 둘째들이 그렇더군요)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넉넉하지 못한 사정에 눈치만 봤습니다. IMF를 겪으신 부모님은 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원하셨죠. 현실과 타협을 보고 취업하기 좋은 적당한 과를 골라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어요.

학과 생활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었냐고 물어온다면, 글쎄요? 첫 OT 때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야, 우리 과 진짜 노잼이야. 다 찌질이 들이라고. 재미? 다른 활동 열심히 해봐." 맞습니다. 재미는 밖에서 찾아야 했어요. 중앙 동아리 모집 마지막 날 학식 먹으러 가다가 연극반 포스터를 봤습니다. 뇌에 번개가 치듯 찌릿했습니다. 바로 달려가 신청 서류를 넣었죠. I형 인간인 제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연극을 하겠다고 신청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운명'적이었을까요 '낭만'이었을까요?

그렇게 시작한 대학 연극반에서 과에서 얻지 못한 즐거움을 얻습니다. 연극은 신기합니다. 대략 3개월의 준비 기간 동안 극한의 고통에 스스로를 몰아넣습니다. 연출과 조연과 스텝과 서로 격양돼 내일부터 안 볼 것처럼 다툽니다. '다시는 연극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첫 공연이 올라가면 그 마음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걸요. 커튼콜은 또 어떻고요. 연극 판 위에서 저는 50대 엄마이기도, 70년대의 사회 초년생이기도, 30대의 백화점 직원이기도 합니다.

간접적으로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을 살아 보는 것은 묘합니다. 인고의 3개월 뒤 드디어 막이 내려갈 때 들려오는 박수와 함성소리는 '내'가 '나'로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단언컨대 첫 연극의 커튼콜이 제 3n년 삶 중 가장 강렬한 경험일 겁니다. 어느 순간 제 공연마다 찾아오는 팬이 생겼습니다. 그의 존재는 부끄러우면서도 세상이 저를 인정해 준 듯해 묘했어요. 그것이 저를 더 살게 했다면 믿기실까요?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것은 생각보다 더 짜릿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휴학 기간까지 총 5년 동안 매년 쉬지 않고 연극을 올렸습니다. 저는 연극배우의 길을 걸었을까요?

이런, 또 두발 후퇴입니다. 적당한 성적으로 졸업해 전공을 살려 부모님이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습니다.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평생 있을 수 있는 그런 직장을요. 취준 기간이 없이 바로 시작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천직이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OT때 한마디 던졌던 그 선배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돈을 주는 '일' 일뿐 '재미'는 없었거든요. 마음 한편 늘 들끓고 있는 예술혼을 진정시키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 쉬는 날마다 방구석에 처박혀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전문가의 공예 클래스를 듣곤 했어요.

안정적인 직장 생활 8년. 그 사이 취미는 수십 개. 퇴사는 두 번. 다시 같은 직장으로 돌아가기를 반복. 세 번째에 저지릅니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을 하기로요. 남들은 배부르다고 생각할까요- 이렇게 태어난 걸 누구를 탓할까요. 한발 앞으로 나갑니다. 돈? 모르겠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거의 20년을 돌아온 셈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새로운 직업을 가진 지 어느덧 1년하고 8개월이네요. 저는 요즘 유리를 자르고 이어붙이거나 1200도에서 녹여 새로운 걸 창조해 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묻습니다. "이것저것 잘하는 거 많잖아, 왜 유리공예야?" 저는 대답합니다. "아무리 해도 어려워. 가령 내가 완벽하게 만들었다며 기뻐해도, 그다음 날 오면 온도가 안 맞아서 다 부서지는걸?". 그렇습니다. 너무나 예민한(저를 계속해서 시험에 들게 하는) 이 소재에 푹 빠졌습니다. 어쩌면 변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업이 바뀌면서 따라온 변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주변으로부터 "언니 얼굴 진짜 좋아졌어요, 언니는 정말 낭만적으로 사는 것 같아요."는 말을 자주 들었거든요. '낭만'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인데 낭만적으로 사는 것 같답니다. 어쩌면 하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요즘 8년의 직장 생활 중 마음대로 입지 못했던 옷을 사고 입는 것으로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아! 맞아 나 이거 좋아했지!’ 잊고 지냈던 취향을 다시 복기합니다. 꼭꼭 눌러 접어 마음 깊숙이 넣어놓고 한 번씩 꺼내보던 예술혼을 끄집어내, 세상에 조금씩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남에게 자유롭게 내보일 수 있음에 신기합니다.

낭만. 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자신을 포장 없이 세상에 내보였을 때 따라오는 수식어는 아닐지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모르겠지요. 낭만. 그 두 글자가 뭐라고 제겐 너무 어렵습니다만, 이렇게 흐르듯 살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으니 저만의 길을 그리다 보면 어쩐지 그 끝에 낭만이 따라올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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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밤
안녕하세요. 알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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