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
나다움
2025.11.08
보드레·⌛14분

어릴 적부터 내게는 늘 ‘착하다’란 말이 따라붙었다. 아기 땐 소파에서 기어다니다 쿵 떨어져도 이마가 시뻘게진 채 그저 헤실거렸고, 함께 목욕하던 장난꾸러기 언니가 땟국물로 가득한 목욕물을 먹여도 맛있다고 퍼마시던 아이였다. 일곱 살 때 나를 왕따시키던 유치원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했고, 내 돈을 빌리는 듯 빼앗는 듯 가져가서는 돌려주지 않는 친구에게 “내 돈 내놔!”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게 두려웠고, 늘 사랑에 목말랐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나는 점점 더 착한 아이가 되어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얇은 가면을 쓴 나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타인의 마음을 먼저 살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은 배려를 건네곤 했다. ‘착하다’라는 세 글자는 어느덧 칭찬이 아닌 나를 옥죄는 족쇄가 되어갔다. 종이 한 장 만큼 얇았던 가면은 점점 더 두꺼워졌고, 내게 맞지 않는 가면을 쓴 나는 점점 지쳐갔다. 때로는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은 날도 있었다. 가령 나는 모든 에너지를 써서 그의 세계에 들어가 공감해줬는데 내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돌아오지 않을 때, 홀로 남은 새벽 밑도 끝도 없는 자책과 자기비난이 덮쳐올 때, 누군가의 뾰족한 말 한마디가 무른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겨 몇 날 며칠 사라지지 않을 때. 나는 그럴 때조차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사람처럼 환히 웃었다. 속에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릴 때는 이런 모습이 나다운 거라고 생각했다. 다르게 사는 법을 몰랐으니까. 그런데 나다움이라 믿었던 그것이 실은 가짜 나다움이었던 것이다. 그저 착한 아이가 되었을 때 돌아오는 칭찬이 좋았고, 그들이 내게 갖는 호감이 좋았다. 누군가 착하지 않은 내게 실망하거나, 그런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미움받기 싫은 마음에서 출발한 수요 없는 배려. 나는 어쩌면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해야만 했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후 상담심리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지만 힘겹게 합격한 곳이었기에 내게 주어지는 기회들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연구조교 활동,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수업과 과제 등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비로소 나의 깊숙한 곳을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전공이었으나, 오히려 내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내 생의 터닝포인트이자 큰 가르침을 준 한 언니가 있다. 오티 날 몇 줄 앞에 앉은 언니는 환한 아침햇살 같았다. 웃는 모습에서 빛이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처음 느꼈고, ‘저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라는 욕망이 강렬히 일었다. 마침 조별 과제 조를 나누는 시간이 됐고, 나는 언니를 주시하고 있다가 언니가 손을 드는 타이밍에 맞춰 잽싸게 손을 따라 들었다. 그렇게 같은 조가 되었고, 언니의 제안으로 연구조교 활동도 함께하게 되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언니는 첫인상보다도 훨씬 더 맑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고된 대학원 생활이 피곤할 법도 한데 누구의 말이든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경청해주었고, 진심으로 공감해주었다. 내 생애 타인에게 그렇게까지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내게 언니는 안온한 안식처 같았다. 그녀는 내게 위로이자, 쉼이자, 빛이었다.

처음에는 못난 질투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까지 맑고 바르고 환하지? 그런데 그 옹졸한 질투심도 금세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녀의 모습은 척도, 가면도 아닌 언니의 본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에. 가식이 1퍼센트도 섞이지 않았다는 게 마음 깊이 느껴지는 사람이라 질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타인에게 다정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또한 다정하고 너그러웠다. 언니에게서는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 특유의 빛남이 느껴졌다. 그녀는 오랫동안 닿고 싶어 했던 나의 워너비이자, 롤모델이었다.

언니를 닮고 싶어 무작정 언니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낯을 가리는 성격임에도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다가가 인사했고, 온 힘을 다해 웃고 이야기하고 공감했다. 그러나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던가. 언니의 타고난 선함과 다정함은 내가 노력한다고 닮아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따라 할수록 오히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냥 인정하게 됐다. 저런 사람이 진짜 선한 사람이구나. 내가 따라 할 수도, 따라 할 필요도 없는 거구나. 그렇게 언니를 따라 하는 건 그만뒀지만, 언니와의 시간은 내게 특별한 깨달음을 남겼다.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1월, 다른 동기들과 같이 임용고시에 뛰어들었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아껴가며 공부에 열중했고, 매일 쌓여만 가는 강의와 합격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가장 먼저 놓은 것은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대충 먹고, 대충 자는 날들이 계속됐고, 몸이 무너지자 마음까지 무너져내렸다. 달리면 달릴수록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꿈이 고개를 들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 정확하게는 글과 가까운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었다. 아니, 어릴 때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놓은 지가 언젠데, 이토록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꽁꽁 숨어 있다가 이제야 들려온 내면의 목소리가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목표 속에서 새로이 깨어난 꿈만이 뚜렷해져갔다.

결국 오랜 시간 숨 가쁘게 달렸던 길 위에서 내려오기로 결심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비로소 새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므로. 처음으로 안정이 아닌 ‘마음’을 선택한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많은 이들이 겪는 단순한 진로 변경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 이 선택은 오랫동안 묵은 껍질을 깨는 작은 혁명이자, 나답게 살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그간 걸어온 숱한 발자국들을 뒤로하고 완전히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지금 이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가슴속에 평생 후회라는 흉터가 남을 것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글과 가까운 삶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책을 통해 누군가의 내면세계를 탐험하고, 글을 쓰며 가장 깊은 나와 마주할 때 가장 ‘나답다’고 느낀다. 여전히 나의 미래는 산 구름 자욱한 아침처럼 희미하다. 그래서 자주 불안하고 때론 조급해지지만, 읽고 쓰는 삶을 향한 걸음마다 새겨진 발자국만은 선명하다. 한결같이 불안한 날들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나와 결이 꼭 맞는 삶을 향해 걷고 있다는 안정감.

낭만이란 결국, ‘나다움’을 선택하는 용기가 아닐까? 현실적인 장벽, 누군가의 참견,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을 뒤로 한 채 나다움을 향한 항해 중인 지금, 내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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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레
안녕하세요. 보드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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