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낭만은 실크, 너의 낭만은 나이롱 낭만. 매끈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질기게 늘어지는 공장 냄새가 교차한다. 실크는 만질 때마다 빛의 결을 다시 만들고, 나이롱은 가벼운 마찰에도 정전기가 일어나 주변의 공기를 들쑤신다. 둘은 너무도 다르다. 하나는 주름을 품고 기억하려 하고, 하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은 채 즉시 원형을 회복한다.
나는 언제나 실크 같은 낭만을 원했다. 너는 나이롱 낭만을 사랑했다. 흔해 빠져 값비싸지 않고 쉽게 손에 닿는 그런 성질의 낭만. 우리의 취향이 충돌한 것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서로 다른 옷감이 피부에 닿기를 바라는 것. 나는 실크의 주름을 '의미'라고 부르고 나이롱의 즉각적 회복을 '가벼움'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날실과 씨실로 나뉘어, 나와 너 사이에 오해라는 직물을 차근차근 직조해 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하늘을 보면서도 다른 공상 속에 빠지면서 각자의 감각으로 계절을 받아들이곤 했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첫눈이 내리던 날, 너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바닥 위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하얗고 작은 입자들. 네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떻게 이 순간에 첫눈이 내리지? 너무 낭만적이다."
나는 그저 추웠다. 너의 말끝에서 반짝이는 열기를 이해할 여유가 없었다. 말보다 손끝에 냉기가 스며드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눈발은 점점 거세졌다. 나는 미끄러질까 봐 하늘이 아니라 바닥만 보았다. 호주머니 속 손가락이 저릿하게 시렸다.
너는 "그치? 너무 낭만적이지?" 하고 연거푸 말한다. 나는 그게 질문인지 아닌지 몰라 그저 잠자코 있는다. '낭만적이란 말을 어떻게 저렇게나 확신에 차서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첫눈은 내게 낭만이 아니라 그저 불편한 날씨에 불과했다. "낭만적", "낭만적", "낭만적이야" 하는 너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때린다.
"첫눈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 눈은 또 오겠지. 그리고 너무 춥잖아, 지금."
시린 손끝보다 더 얼음장 같은 말을 내뱉는다. 그 말은 낭만 타령 좀 그만하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나의 말이 고드름보다 더 날카롭고 차가운 칼끝이 되어 너의 가슴팍을 '팍' 하고 찔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그 생각을 무심하게 날려버렸다.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이름도 뜻도 모를 스페인 노래가 나왔을 때도, 길가에서 낡은 서점 간판을 보았을 때도, 너는 계속해서 낭만을 말하곤 했다.
그런 네가 특히 낭만에 대해 부르짖던 건 바로 '처음'. 함께 맞는 첫 눈, 함께 맞이하는 첫 겨울, 함께 가는 첫 장거리 여행, 처음으로 함께 가는 바닷가, 처음으로 함께 먹는 모든 음식까지. 이젠, 낭만이란 그림 속에 박제된 나까지 싫어질 마당이었다.
너의 낭만에는 부연 설명이 많았다. 처음이란 건 말이지... 새로운 시작, 한 번뿐인 순간, 다시 오지 않을 장면. 그것들 속에 네가 말하는 낭만이 있었다.
흔해 빠진 것들. 똑같은 바다, 똑같은 음식, 어차피 지나갈 계절.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처음이 늘 아름다운 건 아니지 않나' 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집어삼켰다.
내게 낭만은 빛나는 것이어야 했다. 은은하게 빛나는 것. 아껴 입어야 하는 것.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것. 실크의 감촉처럼 은근하고 오래 남는 것.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간직해 두는 것. 내 낭만은 화려한 보석함에 담아둘 만큼 귀한 것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네가 소리 내어 낭만에 환호할 때마다 나는 꽤나 불편함을 느꼈다.
"하, 뭐가 낭만이야. 낭만 타령 좀 그만해."
결국 뱉었다. 내 혀를 박차고 나온 말이 네 얼굴에서 빛을 지워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튀어나오는 말을 막지 못했다. 그 말들은 네 감정을 향한 폭력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척하며 달아나듯 계속 말을 던졌다. 공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은, 네 낭만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가 문제였다.
밤. 천장을 바라보며 내가 던진 말의 잔해를 더듬었다. 낭만과 폭력. 이 이질적 조합이 내 머릿속에서 흘러내렸다. 그러다 이 생각에 다다른다.
'처음으로 고민한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너를 흉내 내듯 의미를 부여했다. 실크를 고집하던 내가, 나이롱 같은 새벽을 맞이한 것이다. 그 새벽 속에서 나는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낭만이 아니라 낭만을 기다리는 나 자신에 취해 있었음을. 너의 감정이 아닌, 내가 만들고 싶은 장면만을 욕망했음을. 너라는 사람 자체보다 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의 반짝임'만 바라보고 있었음을.
낭만을 좇는다는 핑계로, 사실은 내 삶의 텅 빈 부분을 감추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감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 요구가 충족되지 않자 분노를 낭만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분노의 바닥에는 늘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인 걸까'
'나는 주는 사랑도 받지 못하는 사람인 걸까.'
'나는 삶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붙잡을 능력이 없는 사람인 걸까.'
나를 괴롭힌 건 낭만이 아니라, 낭만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마음이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낭만을 피해왔지만, 그 결과로 내 얼굴은 상처받지 않으려는 사람의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얼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얼굴. 그러나 그런 얼굴에는 낭만도, 사랑도, 후회도 자라나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너의 나이롱 낭만은 강했다. 구겨져도 금세 펼쳐지고, 닳아도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반대로 나는 실크만 찾다가 결국 실크처럼 쉽게 찢어지고 있었다.
나는 늦게 배우는 사람이다. 첫눈에 환호하는 사람도 아니고, 일상의 작은 순간들로 감정을 채우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 하나 정도는 알겠다.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낭만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낭만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걸.
후회와 죄의식. 낭만이란 참으로 너그러워서 죄책감, 부끄러움, 실패의 밑바닥에서도 피어난다. 그래서 오늘 밤, 나는 죄를 씻는 대신 죄를 바라보기로 한다. 그 동안 혹사시켜 왔던 낭만을 대면하기로한다. 그러니 오늘 밤은 잠들지 못해도 괜찮다. 낭만은 잠들지 않는 밤에도 존재하니까.
오늘 밤은 네가 좋아하는 '처음'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새 주름으로 남겨둔다. 실크처럼 쉽게 기울어지는 주름, 나이롱처럼 버티며 다시 펴지는 주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해'라는 새로운 직물을 엮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럼 언젠가 아주 먼 훗날일지라도, 너에게 조용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실크는 별로더라. 나이롱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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