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다. 멈춘 시간 속에서 같이 멈춰진 배우가 어느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360도의 딱 절반. 가려진 180도 안에는 뭐가 있을까. 환하게 웃는 표정, 잘 정리된 대사, 연출된 몸짓. 그 반대편에 비어 있는 180도에는 무엇이 있을까.
반틈의 공백. 나라는 사람은 그 빈 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상상으로 채워 넣는다. 아직 설명되지 않은 공간. 그것이 그저 결핍으로 다가온다.
눈앞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 가벼운 농담에 흘러나오는 웃음. 나는 당신에게 가려진 반틈의 공백도 상상으로 해결하곤 했다. 상상은 편리했다. 상상 속의 모든 것은 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존재했다. 기쁨과 슬픔도 내가 알고 있는 형태로만 등장했고, 피로나 고단함 역시 내가 이미 본 적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는 것'을 대하는 것이 '모르는 것'을 대하는 것보다 쉬웠기에. 상상은 상상 이상으로 편리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참다못해 일그러진 얼굴, 억누르지 못한 울음, 눈가를 적시는 눈물, 한참을 떨리다 결국 무너져 내린 어깨. 나는 나도 모르게 후욱- 하고 숨을 한 웅큼 들이켰다. 이런 건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원치도 않았던 순간이다. 당신의 앞면에만 머물던 내가 뒷면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 당혹감이 온몸을 훑어내렸다.
머릿속은 당신이 흘린 눈물을 제멋대로 해석하기 바빴다. 상상의 주머니를 뒤져 눈물의 종류를 살펴본다. 머릿속으로 온갖 부정적인 단어를 불러왔다. 외로움, 결핍, 속상함, 그것도 아니면 두려움. 그런데, 왜? 무엇이 외로워서? 무엇이 부족해서? 무엇이 속상해서? 무엇이 두려워서?
그동안 상상 속의 당신은 내가 아는 감정의 범주 안에 놓여 있었다. 그 안에서 슬픔은 이유를 가졌고, 눈물은 종류별로 분류되었으며, 침묵도 설명 가능한 태도로 이해되었다. 어디부터 오류가 있었던 걸까. 보이지 않는 180도 안에 무엇이 있었던 걸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앞면의 언어로 뒷면을 해석하려 하니, 그게 될 턱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일시 정지를 누른 후 당신을 지나쳐 도망가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말이 줄어들었던 것도 같다. 아니, 말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내가 듣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이미 당신의 뒷면을 상상으로 완성해 두었기 때문에. 실제의 당신이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표정을 짓든,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의 부록에 불과했다. 상상은 현실보다 앞서 나갔고, 나는 그 앞서감에 스스로 취해 있었다. 그것이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속도라는 것도 모르고...
'불안.'
결국 상상은 나를 보호하지 못하고 반대로 고립시켰다. 상상 속의 당신은 언제나 내 편이었지만, 현실의 당신은 점점 멀어졌다. 그 거리감 앞에서 나는 다시 상상을 택했고, 그 선택은 또 다른 오해를 낳았다. 이렇게 관계는 조용히 어긋났다. 누구도 소리 내지 않았지만 틀어진 각도는 분명히 존재했다. 180도. 딱 그만큼.
그러나 틀어진 각도와는 별개로, 다채로운 앞면의 나날이 지속되었다. 당신이 소리 내어 울던 날. 그 날 이후로 당신은 투박한 뒷면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머리는 멈추지 못했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 그것이 당신이라는 영화의 속편이 되리라는 생각. 앞면과 뒷면을 그럴듯하게 꿰매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앞면은 매끈하고 뒷면은 거칠겠지만, 이 삐걱거리는 질감을 연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당신의 앞면과 뒷면 사이를 서성였다.
'모름.'
설명되지 않은 상태, 미완의 표정, 말로 붙잡히지 않는 결론. 나는 이것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상상이 한계에 부딪히자 나는 '모름'을 견디는 대신, 모르는 것을 맞히려 시도했다. 당신의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고, 은근슬쩍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요즘 컨디션은 어때?" "오늘 기분은 어때?" "피곤하진 않아?"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해 당신은 "괜찮아"로 일관했다. 하나라도 알아내기 위해 당신의 중심부를 겨냥해 끊임없이 활시위를 당겼으나, 화살은 그저 힘없이 바닥에 꼬꾸라졌다. 그 부분이 나를 미치게 했다. 정확히는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미쳐가게 했다.
"...나를 왜 만나? 나를 사랑하긴 해?"
아, 사랑.
나도 모르게 "미안해" 하고 말해버렸다. 그날 당신은 또 울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단어를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거였는데. 이 설명은 덧붙였어야 했는데 내 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너의 뒷면, 너의 빈 공간을 허락도 없이 내 상상으로 점유하려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어떤 말도 꺼내기가 힘들었다.
내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그래,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아마 그중 가장 큰 실수는 사랑이란 명목으로 당신의 뒷면을 마음대로 재단한 것. 모르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 채 상상으로 빈자리를 메웠고, 그 상상을 사실처럼 다룬 일. 그것이 문제였다.
상상은 무해해 보이지만, 언제나 조용히 상대를 삭제하곤 한다. 실제의 당신 대신 내가 만들어낸 대상을 앞에 두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당신을 내 언어 안에 가두고 있었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성급히 분류하지 않는 것. 타인의 빈 공간을 채우지 않고, 그 공간이 그대로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관계 안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이자, 동시에 가장 낭만적인 선택. 나는 그 선택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연습을 하려고 한다. 상상이 앞서 나가려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법을 연습한다. 당신의 표정을, 행동을 쉽게 구분하여 분류하는 대신 비워두기로 한다. 성급히 맞히는 대신, 틀린 채로 놔두기로 한다.
그것이 사랑의, 그리고 낭만의 윤리.
사랑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 태도. 타인의 180도를 존중하는 태도. 모름을 견디는 쪽을 선택하는 용기. 그 윤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일시정지를 누르지 않아도 당신의 뒷면 앞에 도망치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비로소,
상상이 아니라 진짜 관계가 시작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