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 위로, 아래에서 위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린다. 스르륵, 빠르게 움직이는 스크롤. 스르륵, 무한하게 이어지는 타인의 이야기. 피드 속에 온 세계 사람들의 낭만이 박제되어 있다. 낯선 여행지, 먹기 아까울 정도로 장식된 접시,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풍경, 그 속에서 포착된 웃음들.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일수록 더 화질 좋은 낭만이 이어진다. 왠지 나도 이 낭만의 향연에 동참해야만 할 것 같다.
사진첩을 뒤진다. 정리되지 않은 추억들. 나는 그 안에서 나의 낭만을 찾아내려 애쓴다. 스르륵, 스르륵. 쓸 만한 낭만이 없네. 거의 반절이 캡처한 이미지들이다. 분명 내 사진첩인데, 남의 낭만을 스크랩해 놓은 게 더 많다. 또다시 스르륵, 스르륵. 스크롤이 8월 31일에서 멈춘다. 오픈한 지 한 달도 안 된 카페를 방문했던 날. 찾았다. 요긴하게 쓰일 낭만. 엔틱한 소품들로 가득한 실내, 한쪽에 잘 진열된 레코드판,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놓인 고급 커피잔. 그래, 이거다.
이날의 사진 중에서 가장 선명한 것을 고르고 고른다. 스무 장의 사진 중 살아남은 것은 다섯 장뿐. 나는 포획한 다섯 장의 사진 위로 필터를 덧입힌다. 더 선명하게, 더 따뜻한 색감으로, 또 하나는 쨍하게 보이도록 채도를 올리고, 또 어떤 사진은 뒷배경을 흐려서 분위기를 맞춘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이 사진은 다 좋은데 사진 귀퉁이에 누군가의 팔꿈치가 삐죽 튀어나와 있다. 싹둑. 망설임 없이 이 부분을 잘라버리고는, 나머지 풍경만 화면에 가둔다.
그 아래로 이런저런 말을 그럴듯하게 써 내려간다. 제일 먼저 '신상카페'라는 해시태그 하나. 요즘은 '느낌 좋은'이라는 말을 '느좋'이라고 한다지. '느좋카페'라는 해시태그도 하나 더 추가. 그리고는 '달달한 주말'이라든가 '여름의 끝자락'이라든가 하는 감상적인 말을 늘어놓고는 작성 버튼을 누른다. 나는 이렇게 포획한 낭만에 만족감을 느끼며 창을 닫는다.
지잉-. 몇 시간에 한두 번씩 알림이 울린다. 게시글에 보이는 붉은 하트.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낭만이란 아이템으로 얻은 관심에 잠시 입꼬리가 씰룩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림이 줄어들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괜히 게시글을 열었다 닫았다, 다른 피드들을 들락날락, 그러면서 몇 시간을 펑펑 써버린다. 스르륵하고 만족감이 사라진다. 문득 허무해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피드는 몇 초짜리 낭만일까. 더 잘 다듬어진 낭만들이 자꾸만 부러워진다.
다섯 장의 사진을 다시 살펴본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왠지 처음의 빛깔을 잃어버린 것처럼 색이 바래 보인다. 그저 낭만을 자랑하기 위한 장식품 같다. 그럴듯해 보였던 나의 낭만이 시들해진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르륵. 마지막 다섯 장째에 시선이 머문다. 아까 잘라버린 귀퉁이에 마음이 쓰인다. 화면 밖에 은폐된 너의 팔꿈치. 내게도 네게도 소중한 너의 신체. 무심코 지워버린 너의 존재감. 나는 너와 쌓은 낭만 속에서 너를 배신하고 있었구나.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문득 현실과의 괴리감이란 말을 떠올린다.
공기와 닿으면 바로 휘발되어 버리는 낭만의 향, 털어놓는 순간 희석되기 시작하는 낭만. 이것이야말로 낭만의 역설이 아닐까.
온갖 미사여구를 붙인 낭만을 설명처럼 털어놓는 순간, 낭만은 '정보'가 된다. 세련된 레스토랑, 분위기 좋은 카페, 데이트하기 좋은 와인 바. 이렇게 수집될 수 있는 단순하고 친절한 정보. 한때 살아 있는 경험이었으나 '분류 가능한 항목'으로 전락해 버린 낭만. 정보가 된 낭만은 따뜻하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는다. 잘 꾸며진 장면은 언제나 반짝이지만 그 반짝임은 여운이 없다. 그저 정보로서 충실히 기능할 뿐이다.
낭만이란 말 앞에 '유용한'이란 단어를 붙여서 읽어본다. 유용한 낭만. 내 낭만이 제일 유용하니 제발 봐달라는 몸부림. 그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얻은 좋아요가 주는 포만감은 헛배처럼 금세 꺼져버리곤 했다. 반응이 멎으면 내 감정도 무뎌졌다. 그렇기에 그 포만감은 나를 살찌우기보다 내게서 무언가를 가져가기 바빴다. 남은 거라곤 정서적 공백이었다. 타인의 손길을 거친 감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세상은 '기록하라'고 말하지만 기록이 깊이를 더해주지는 않는다. 미적으로 아름답고 잘 다듬어졌으나 그 속엔 경험이 없다. 사라진 것인지 잃어버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속이 비어 있는 건 확실했다.
사진 속에서 밀려난 것들이 정작 그날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늦게야 알아챈다. 기억을 더듬듯 그날의 사진을 다시 본다. 커피가 흘러내린 컵 받침, 미처 정리하지 못한 냅킨 조각, 우연히 잡힌 어깨와 손가락, 그리고 아예 구도 밖으로 내몰린 그날의 표정까지. 해시태그도 이름도 설명도 붙지 않은, 그 덤 같은 것들이 되레 나를 멈추게 한다.
덤으로 주어진 것들을 머릿속으로 더듬으며 생각한다. 보여주기 위해 낭만을 희생시키지 않겠다고. 단 몇 초를 내보이기 위해 영원을 날리는 도박은 하지 않겠다고. 누군가에게 내 낭만을 확인받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한다.
나는 더 이상 내 세계를 매끈하게 포장하지 않기로 한다. 부족한 채로 둔다. 흐린 채로 둔다. 잘리지 않은 채로 둔다. 보여주지 않는 연습을 하기로 한다. 더는 기억의 날개를 꺾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지켜내기로 한다.
바로 내 낭만,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