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잡고 흔들어 눈을 뜨게 만들어줘
날 잡고 흔들어 눈을 뜨게 만들어줘
2025.12.06
교오·⌛13분

조용한 방, 희미한 모니터 빛, 화면을 보며 나란히 누운 너와 나. 평온해야 마땅한 조건이지만 그것들로 말미암아 내 마음은 계속 부서지고 있었다. 감정이 아니라 관성으로 붙어 있는 사이. 서로를 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피하는 것도 아닌 채로 프레임 속만 보고 있는 너와 나. '함께'라는 말과는 가장 거리가 먼 방식으로 한 침대에 누워 있는 너와 나.

너의 어깨가 화면을 가린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입을 맞추는 극적인 순간, 나는 무표정하게 너의 어깨를 본다. 내 시선이 보는 건 미움도 아니고, 애정도 아니며, 그저 존재하는 하나의 물체였다. 그 물체를 침대 밑으로 밀어버리고 싶다. 강하게 밀어 떨어뜨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정도의 결단조차 내릴 힘이 없어서. 어깨라는 장애물을 밀어버리면, 그다음엔 너와 나 모두 벼랑으로 떨어질 테니까.

사실 말 한마디면 될 일이었다. "조금만 비켜줘." 단 한마디면 된다. 해답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지금 내 혀끝과 말에 분명 송곳이 박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내게 있어 너와의 대화란 싸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네가 그 송곳을 발견한다면 분명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말을 하는 데 드는 힘도 지금 나에게는 너무 무겁다. 말과 대화에서 오는 피로감. 기필코 이어질 싸움, 예측 가능한 패턴. 말이 쌓이면 불화가 되고 불화가 쌓일 만큼 쌓여야 끝나는 대화. 그 대화는 우리의 관계를 바닥까지 흔들어 놓곤 했다. 나는 이런 대화가 몹시 싫다. 그래서 말을 꺼내는 것보다 더 귀찮은 일을 택한다. 너라는 사람을 미워하는 일. 근거 없는 미움, 근거가 없어서 더 깊게 파고드는 미움. 번거롭지만 그쪽을 택한다.

가려진 화면을 걷어내는 것보다 감정을 가리는 편이 더 편하다. 내가 네 어깨를 차갑게 밀거나 혹은 뾰족한 어투로 말을 하거나,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 너는 서운함을 말할 것이다. 너의 서운함은 내 귓가에서 감정으로 번역되지 않고 소음으로 남을 테고. 나는 등을 돌리고 잠들게 될 게 뻔하다.

불이 꺼진 방. 빛이 들지 않는 밤. 어둠은 침묵했고 너는 늘 누워 있던 방식 그대로 잠들어 있다. 등을 돌린 내 어깨와 허리에서 이불이 스스륵 빠져나간다. 이불은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네 쪽으로 움직였다. 이불을 걷어차는 오래된 너의 습관. 그 자연스러움이 오늘따라 잔혹하게 느껴졌다.

이불 끝을 붙잡아 끌어당긴다. 그러나 네 몸 아래에 고정된 이불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를 고려하지 않는 기척. 그 기척이 가슴 한가운데 균열을 만들어냈다. 말보다, 눈빛보다, 싸움보다 더 조용하게 퍼지기 시작한 균열.
나는 네가 이불을 걷어찰 때면, 네 몸의 온도를 한번 확인한 후 이불로 배를 살포시 덮어주곤 했다. 너는 몰랐겠지만 매번 그랬다. 나는 잠결에도 네게 이불을 덮어주는 사람인데, 너는 잠결에도 이불을 나눠주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사실이 나를 더 깊이 베었다. 보드라운 이불에도 사람이 베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결국 이불보다 덜 중요한 존재로 미끄러진 거다. 너에겐 나의 존재보다 이불 한 장의 온기가 더 가치 있을 것 같다는 그 생각, 그 감각. 그것이 나를 아프게 했다. 이불 끝을 놓았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에게조차 밀린 관계를 붙잡을 힘 따위 없었다.
말 없는 무심함. 이불을 놓으면서, 이 관계는 절반쯤 죽어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내 감정이 부패하기 시작했던 때가.

너는 입버릇처럼 "서운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마음이 이미 닳아 있었기 때문에. 너의 서운함은 감정이 아니라 계속 날아드는 청구서 같았다. 무언가를 계속 갈구했고 나는 그 요구를 감당할 기운이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오해는 빠르게 자라나 질병처럼 퍼졌다. 온몸으로. 면역도 없고, 치료제도 없고, 진통제도 없었기에, 그저 퍼지기만 했다.
이제 내 감정은 부패를 넘어서서 타락하기 시작했다. 가혹하게도 타락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냥 지금의 나는, 너를 미워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넌 나를 미워해. 네가 만들어 놓고서, 네가 먼저 나를 미워하더라."

너를 미워하는 꿈. 이 꿈을 진짜 꿀 줄이야. 너는 잠자코 내가 말하길 기다린다. 네가 내 입이 열리길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지만 않았어도, 꿈인 걸 눈치 못 챌 뻔했다. 현실이었다면 네가 내 침묵을 가만둘 리 없다. 겨우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면 '왜'라는 질문이 두통처럼 쏟아지곤 했다.

"넌 진짜 나를 본 적 없어. 애초에 보려고도 안 해."

그 말을 끝으로 꿈이 끝났다. 숨이 막혔다. 네 다리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불은 여전히 네 쪽에 있었다. 그 사소한 사실이 전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희망 따위 가지지 말라고.
숨을 들이쉬는 대신 감정을 들이켰다. 감정은 손에 박힌 가시처럼 움직일수록 더 아파왔다. 무거운 다리를 매몰차게 옆으로 밀치면서 너를 째려본다. 잠든 너는 변명이 없다. 현실의 너는 조용했지만, 가상의 너는 현실보다도 잔혹했다.

하마터면 꿈인 줄도 모르고 너를 미워하는 이유에 대해 설득을 시작할 뻔했다. 그게 내가 너를 설득하는 것인지 내가 나를 설득하기 위함인지 모르겠지만.

그래, 인정한다.
나는 아직 너를 잘 모른다.
너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네 뒤의 그림자를 미워한다.

팔뚝에 닿은 네 몸에서 애매한 온기가 느껴진다. 뜨겁지도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온기가 오히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희망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미련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애매한 온기. 애매함은 항상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바란다.

누군가 내 어깨를 잡고 강하게 흔들어 주기를. 왜곡 없이, 미움 없이, 단 한순간이라도 진짜 눈을 뜨게 해주기를. 너를 제대로 보는 순간에 도착하게 해주기를. 그 이후에 다가오는 것이 실망이든 좌절감이든 상관없다. 그저 너를 미워하는 꿈에서 깨고 싶다. 너를 미워하지 않는 진짜 순간에 도착하고 싶다.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가 나를 버티게 한다. 나는 아직 등을 돌리지 않았고, 너 역시 등을 완전히 돌린 건 아니라는 것. 그 가능성 하나만이 나를 이 침대에서 버티게 만든다.
예측 가능한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예측 불가능의 가능성. 통제되지 않은 것들 속에서 나타날 변수. 다른 차원에서 오게 될 변수를 찾아내는 일. 그것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끝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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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오
안녕하세요. 교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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