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그것은 관계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
낭만은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혹은 멀게 만드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고 말이야.
늘 충분한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취향과 성향,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루의 피로와 기분을 이야기하고 어떤 말에도 당황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사이. 이 정도면 당신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겼다. 익숙함이 사람을 착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잘 안다'는 자만이 관계를 흐리게 한다는 것을 잊을 만큼, 확신이란 너무도 쉬운 것이었다.
아주 쉬운 부탁이었다. 있잖아, 마주 보는 식탁에서는 나이프가 내 얼굴 쪽을 향하지 않게 놔둬 줘. 나의 작은 불편. 칼끝과 눈이 마주칠 때면, 항상 묘한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알았지?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프를 가로로 놓았다. 그 끄덕임에 나는 금세 편안해졌다. 그 끄덕임 하나로, 나는 당신에게 내 말이 닿았다고 생각했다.
"아 맞다, 미안. 또 그랬네."
여러 번의 반복. 나이프가 내 쪽을 향해 있다. 자꾸만 가는 시선을 막을 수 없다. "있잖아, 내가 저번에 말했는데..."까지 뱉으며 나이프에 시선을 둔다. 당신은 내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나이프 끝을 내 쪽으로 두지 말아줘."하고 간단히 말한다. 당신은 "응, 알았어." 하고 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다음에도, 그리고 그 뒤에도... '알았어' 한 번, 그리고 이후에는 '미안해'가 덧붙여져 귓가에 머물렀다. '알았어'와 '미안해'가 반복될 때마다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별것 아닌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말이 그만큼 가벼웠던 것인지. 이 혼란스러움을 다른 감정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팠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아팠다. 충분한 대화가 오가도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 그런 때가 더 아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물론 편안한 날도 있었다. 당신의 배려 덕분이 아니라, 나이프가 필요 없는 식사 자리였기 때문에.
나이프가 필요한 메뉴, 오믈렛. 당신은 내 앞에 놓인 오믈렛 접시를 가져다가 손수 갈라 준다. 부드럽고 폭신한 계란이 이불처럼 펼쳐진다. 포근하게 열린 오믈렛에서 수증기가 올라왔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내 앞으로 옮겨지는 접시를 본다. 나는 그 장면이 참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래에 놓인 나이프를 본다. 그 끝이 내 쪽을 향해 있었다. 방향이 옮겨지기를 잠시나마 기대하다가, 그러다가. 기대하기를 그만둔다. 당신이 만든 다정한 풍경 속에서 칼끝만 보고 있는 내가 싫었다. 애석하게도 당신이 아니라, 내가 미웠다.
내가 미운 나는, 그날의 오믈렛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이 잊어버린 무언가가 나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만 머릿속에 남았다. 기억되지 않음으로 인한 상처가 아예 감각으로 남아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대화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으나 같은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무게 없는 말을 해 보았자 금세 흩어질 것이기에 침묵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 침묵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보호막이었다. 당신의 행동을 무심함으로 해석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것의 결과로 택한 것이 침묵이었다. 나를 지켜주던 침묵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삼킨 말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이미 삼킨 말을 다시 내뱉지 않게 지키는 일이 더 괴롭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간에, 다리를 건넌 뒤에야만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당신을 향해 다리를 건너는 일.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그것이 존중이 아닐까. 그리고 내 말이 다리가 되지 못했다면, 그런 것이라면... 내 말은 어디로 간 걸까. 내가 한 말은 왜 다리 밑으로 버려졌을까. 다리 밑으로 같이 버려진 것은 무엇일까.
내 말이 중요한 사람. 중요하다는 건 뭘까. 내 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습관을 만들게 하는 것일까. 이것저것 생각해 보다가 문득 '말의 무게'라는 말을 떠올린다. 말의 무게란 내뱉은 말이 지니는 것이 아니라 삼킨 말이 지니는 것이었던 걸까?
나는 내가 삼킨 말을 들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분명 처음엔 칼끝을 살피는 행동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들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당신은 익숙한 손길로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두었다. 칼끝의 방향은 여전히 내 쪽에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의 방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랑과 무심함의 어느 중간 즈음에서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지만 말의 다리를 끊어버린 것은 아니다. 다리를 끊어버리면 완전히 식지 않은 이 마음이 갈 곳이 없어지니까. 붕 뜬 마음으로 가벼운 존재가 되어 사라지고 싶지 않다. 무너진 다리를 감당할 힘이 없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애정의 방향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낸 문제에 대해 당신이 정답 같은 반응을 가지고 오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기다린다. 칼끝이 나를 향하지 않기를. 방향이 바뀐 칼끝을 계기로 오랜 침묵을 깰 수 있기를. 삼켜버렸던 무거운 말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칼끝이 아닌 당신의 눈을 보며, 고맙다 말할 수 있는 그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이 낭만으로 기억되기를.
추천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