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누구도 다녀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 안에는 사람의 공기가 있다. 내가 지닌 체온, 내 움직임의 흔적, 내가 가진 분위기. 그것들을 주머니에 넣은 채 길을 나선다.
땅이 젖어 있다. 내린 흔적이 아니라, 비가 멈춘 흔적이다. 물기가 얇게 깔린 아스팔트는 빛을 반사하고, 그 위로 지나가는 발끝마다 미끄럽지 않은 미끄러움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신발 밑창이 젖은 면을 밟을 때마다 아주 작은 소리가 난다. 찌익-. 작지만 또렷한 마찰음. 찌익-. 끼익-. 끽-. 사실 어떤 말도 실제와 똑같지 않다. 단어는 그저 단어일 뿐이다.
젖은 땅이 냄새를 바꾼다. 먼지가 눌린 자리에서 흙내와 차가운 수증기 같은 것이 코끝에 잠깐 머문다. 거리의 모두가 바쁘다. 아무도 그 냄새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 소리를 확인하지 않는다. 명명하기 어려운 '그' 냄새, '그' 소리. 아마도 모두가 알 그 냄새, 그 소리의, 느낌.
길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어긋난 보도블록 사이에 고인 물, 사람들이 지나가며 생기는 발자국. 어떤 발자국은 금방 마르고 어떤 발자국은 조금 더 깊게 남는다. 누가 더 무겁게 걸었는지, 누가 더 급했는지, 누가 더 오래 머물렀는지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내 해석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길이 없다. 나는 그 모호함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지나친다.
신호등 앞에 선다. 기다리는 동안 손은 습관처럼 할 일을 찾는다. 휴대폰을 꺼내지 않아도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소리도 진동도 울리지 않는데 동작은 남아 있다. 조용한 휴대폰. 손동작을 계속할 이유가 없는데 손은 가만 있지 못한다. 움직임을 의식하기 시작하니, 방금 손이 돋아난 사람처럼 그 존재가 어색해진다.
초록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인다. 같은 방향으로 걷지만 각자의 목적지는 서로 다르다. 나는 '수많은 나'들 사이를 통과해 반대편에 선다. 도착했다는 느낌은 없고, 그냥 서 있다. 서 있는 동안 내 얼굴에 관심을 주는 시선은 없다. 그 무관심이 필요 이상으로 편안하다. 오늘의 나는, 내 표정도 내 기분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자동문이 닫히고 공기가 바뀐다. 바깥의 젖은 냄새는 뒤로 밀리고, 실내의 건조한 냄새가 앞을 채운다. 따뜻하다고 하기엔 미지근하고 조용하다고 하기엔 기계음이 섞인 고요함이다. 오래 머문 흔적도 없고 막 비워진 자리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상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숫자가 바뀌길 기다린다. 올라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려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 짧은 지연이 나를 멈추게 한다. 머리가 비워지는 시간이 잠깐쯤 생긴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걸, 문이 열릴 때쯤 알아차린다.
방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는다. 바닥에 닿는 소리가 예상보다 크게 울린다. 조용해서 그렇다. 조용하다는 건 아무 소리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익숙한 소리만 남아 있다는 뜻과도 같다.
끽-. 젖은 땅을 밟았던 신발이 현관에 멈추자, 바깥의 소리가 실내로 아주 조금 옮겨온다. 양말 끝이 미세하게 축축하고 발바닥은 차갑다. 참을 만한 불편함이다. 참을 수 있는 것들은 대개 넘겨지지만, 오늘은 그냥 넘기지 않는다. 넘기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가 생기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의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아주 소박한 방식으로 인정해 보고 싶다.
욕실로 들어간다. 급하진 않다. 바깥에서 묻혀온 것들이 남아 있는 느낌이 싫어서가 아니다. 반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움직인다. 수도꼭지를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온다. 물은 원래 이렇게 흐른다. 차가운 것이 지나가고 나서야 따뜻한 것이 온다. 기다리는 동안 손과 발은 불평하지 않는다. 물 흐르듯 사는 삶이란 불평 없는 삶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온도의 변화에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건 단순히 물의 일이고, 또 단순히 피부가 할 일이다.
따뜻한 물을 두 손바닥에 모아 얼굴에 끼얹는다. 거울 속의 얼굴은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덜 조급한 얼굴이다. 물기를 대충 닦고 나오니 발바닥의 차가움도 덜해진 것 같다. 잠깐의 외출 이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안심시킨다. 갑자기 달라지는 일들의 대부분이 나를 재촉해왔기 때문이다.
창가에 선다. 밖의 불빛들은 멀리 있고, 가까운 어둠은 더 짙다. 불빛이 스쳐가면서 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노면을 스치는 타이어 소리가 작게 들린다.
나는 그냥 서 있다. 무엇을 확인하지도 정리하지도 않는다. 무언가 감시하기 위해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안전을 확인하려 하지 않아서인지, 몸을 눕히지 않아도 평온한 상태가 허락된다. 머리가 몸을 놓아주는 기분이 든다.
컵에 물을 따른다. 한 모금만 마시고 내려놓는다. 컵 벽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내려오다가 테이블 위에 작은 원을 남긴다. 원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라질 것을 안다는 건 이상하게 마음을 가볍게 한다. 붙잡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그 넓이 자체가 위로가 된다. 여기서는 누가 나를 평가하지도, 부르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시선이 없을 때에도 몸은 계속 존재한다는 그 평범한 사실이, 새삼 놀랍다.
혼자 있다. 그런데도 말은 생긴다. "이 정도면 괜찮다" "별일 아니다" "나중에 해도 된다" 같은 문장들이, 내 안에서 안내방송처럼 흘러나온다. 그 말들은 항상 친절하다. 상황을 정리해주고, 표정을 매끈하게 만들고, 오늘의 불편을 내일의 나에게 넘긴다. 익숙하고 다정한 말. 그 말에 수긍해 버리면 진짜 감각은 뒤로 밀려버린다. 말이 붙는 순간, 감각은 얇아지고 얇아진 것들은 쉽게 잊힌다.
그래서 오늘은 말이 생기는 속도를 조금 늦춰본다. 머릿속 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게 할 이유도 없다. 때때로 말의 친절함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진솔한 충고를 전해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말이 자리를 잡기 전에 숨을 고를 필요는 있다.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방금 튼 수도꼭지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도 바뀌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든다. 그 시간을 없애버리면, 나는 늘 같은 말만 듣게 된다.
젖은 땅을 밟고 돌아온 날의 기억은 대체로 금방 잊힌다. 누구도 기억해달라고 하지 않았으며, 기록할 만한 사건도 없다. 그러니 더더욱, 오늘의 하루는 세상에 꺼내놓기 좋은 형태가 아니다. 꺼내놓는다는 말이 이토록 거창하게 들린다는 건, 내가 '세상'이라는 단어를 너무 큰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뉴스의 크기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주목받는 이야기만으로 굴러가지도 않는다. 젖은 땅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현관에 따라 들어온 빗물의 형태, 그리고 오늘의 비를 막아준 우산까지. 이렇듯 자랑할 수 없는 종류의 것들도 세상을 채운다. 그것도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젖었던 땅은 내일이면 마를 것이다. 흔적은 생각보다 금방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사라진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사라진 것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빈 휴대폰을 하릴없이 만지작거리던 내 주머니 속에서처럼, 손은 계속 움직이려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시 거창한 설명을 붙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불을 끄기 전, 방을 한 번 더 둘러본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나는 그 사실을 굳이 다른 의미로 번역하지 않는다.
나의 어제, 나의 오늘, 나의 내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장면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게 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 무엇도 붙잡지 않고, 애써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그대로 하루를 끝낼 수 있다. 무언가 지나쳤거나 잊었거나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 따져 묻지 않기로 한다.
우리의 하루는,
우리 모두의 시간은,
그냥 그런 것이다.
평범한 하루를 살았다고 천벌을 받진 않는다.
그러니 오늘의 낭만은 여기까지이다.
불을 끈다. 별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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