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고해성사
2025.11.10
admin·⌛8분

서른 살이 되었다.
그러니까 선생님보다 내가 5살이 더 많아진 것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열일곱이던 해였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미숙하던 시절, 25살의 그녀는 나만큼 앳된 얼굴을 숨기지 못 한채 교단에서 우리에게 첫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큰 눈엔 그녀가 쌓아온 온갖 지식과 열정이 가득 했으며 결혼이 곧이라며 몰래 피앙새를 우리에게 소개시켜주던 날엔 우리만의 비밀을 공유했단 사실에 설레 그 눈을 보며 웃었다. 그러자 그녀도 그 큰 눈을 접으며 같이 웃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선생님들과의 불화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은근슬쩍 그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소문은 살을 붙이고, 시간이 점차 흘러 급식실에서 홀로 끼니를 챙기는 그녀의 모습이 점차 익숙해져갈 때 쯤, 어린 아이들이 쉽게 선동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하릴없이 자습으로 수업 시간을 떼우던 날, 그녀가 교실 문을 세게 열며 소리 쳤다.

"내가 너네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니?"

아이들은 침묵했다. 불과 10분 전까지 선을 넘던 발언들을 똑똑히 기억하는데도 그랬다.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을 들었다. 어린 판단이었다. 내 말에 그녀가 말했다. 네가 나라면 안 그랬을 것 같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제가 선생님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에요. 그 뒤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비겁하게도 그렇다. 그저 그녀가 우리에게 해오던 날 선 레파토리들, 하지만 그 당시엔 그녀가 망가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날이 더 더워졌다. 방학을 맞았으며 나는 게으른 나날을 반복했다. 그 일상은 깬 건 아침 일찍 울리던 벨소리였다. 통화를 마친 뒤 나는 허겁지겁 하복을 꺼내 입었다. 주말에 느긋하게 누워있던 아버지가 얼 빠진 나를 나무랐다.
나는 그저 중얼거렸다. 장례식장에 가야한다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음 소리를 들어 본 적 있을까.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 목소리는 여전히 사무쳐 잊혀지지 않는다.

금쪽 같은 내 새끼. 아이고. 금쪽 같은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하나..

입구에서부터 들리는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들어갈 수가 없어 도망쳤다. 나를 따라 나온 친구가 나를 쫓아 잡았다. 우리는 잘못이 많으니 꼭 뵈어야한다고 그랬다. 장례식이 열리는 며칠 내내 나는 빠짐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자식 잃은 부모의 울음을 들었다. 장례식이 끝나던 날, 학생 단체로 대절 버스를 타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보내키로 했다. 그녀가 좋아하던 곳, 자주 가던 곳을 들렀다. 당연했을까?

버스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으로 개학날, 우리에게 주려 미리 주문해두었다던 음료수 한 캔을 받았다. 나는 20살이 될때까지 그 음료수 캔을 버리지 못했다. 좋지 못한 생각들로 고교시절을 모두 보냈다. 내가 그녀를 죽인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시월 근처만 가도 벌벌 떨었다. 죄스러운 마음은 그녀의 기일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더 많은 불행들이 죄를 덮었다. 25살이 되던 시월, 울지 않고 그녀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이제 친구가 되었네.

8년동안의 감상이었다. 그 뒤로 한 해, 두 해. 내가 그녀보다 나이가 많아지면서부터는 감히 그녀를 찾아가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그녀가 안치된 곳을 기억할리 없었다. 한심하게도 30살이 된 오늘 날에도 그녀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를 기억한다. 30살이 된 지금의 감상은 선생님도 어린애였는데,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디딘 곳에서 홀로 얼마나 외로웠을까.

사실 울지 않고 그녀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단 건 순 거짓말이다. 여전히 그녀를 말할땐 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린 날엔 두려움으로 울었지.
지금은 안타깝고 안타까워 운다.
생떼 같은 그 목숨이 너무 아까워서.

내 생에 마지막으로 낼 용기를 얼추 짐작한다. 아마 그녀 앞에 다시 서는 순간이리라. 그런데 그 때 할 말을 아직 못 찾았다.

그 말을 찾으려 살아 간다.
납득될 수 없는 어린 죽음을 위로할 수도,
그 어떤 면죄부도 될 수 없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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