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증오한다.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가족, 아버지를 증오한다.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있다.
그 아이에게는 부모님이 없다. 부모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
마땅히 곁에 있어야 할, 뛰어놀 대지 같은 존재인 어머니라는 사람은 구전동화처럼 누군가의 입으로 전해 들었을 뿐이다.
‘이혼했다’
‘도망갔다’
‘죽었다’
‘어딘가에 잘 산다’
숨 쉬듯 당연하게 쓰이는 엄마라는 단어는
어린아이에게는 동화 속 신화 같은 존재였다.
마치 솜사탕처럼 뭉게뭉게한 기억들.
안으려 하면 녹아 없어져 버리는, 손에 잡히지 않는 기억들.
어린아이에게 어머니란 사탕 같은 달콤함이었지만,
세상의 단맛을 조금 맛보고 나니 안에 씁쓸함이 있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아 버렸다.
‘어쩔 수 없든, 어떤 이유가 있든… 버린 건 버린 것이다.’
달라지지 않는 결론에, ‘엄마’라는 의미를 스푼 가득 떠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아버지.
그 말에서 느낄 수 있다는 온갖 좋은 감정들.
그 모든 것의 부재가, 내가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유다.
알코올 중독.
사회 부적응자.
정신병.
미친놈.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단어는 많다.
좋게 말할 수 있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붉은 도화지를 검게 완전히 칠해 놓고,
“붉은 점을 찾아보라” 한다면 더듬어야 겨우 찾을 수 있을까.
아버지는 ‘죽음’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내일이 없는 듯 투명한 액체를 연거푸 들이켜고,
곁에 없는 사람을 데려오라며 소리치고,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함께 평온했던 적 없는 날들이 더 산산히 조각났다.
‘내일은 조금 나아지겠지?’
그 기대는 항상 웃음거리가 됐다.
매일 반복되던 주정,
마음을 찔러대던 유리 파편들,
어제도 없고,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는 사람을 보는 건
곁에서 ‘죽음’을 함께 키우는 것 같았다.
검은색이 스며들어
내 나날도 회색빛이었을까.
어쩌다 한 번, 수채화 같은 색이 하루를 물들일 때면
너무 아름다워서 울음이 터졌다.
다시 색을 입힐 날이 올까.
무채색 지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하염없이 울었다.
마음속 어린아이는 그런 날들을 살아냈다.
가족,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그 피가 내 몸속을 돌아다녀서
빼내려 하면 할수록 정신이 혼미해진다면,
나는 지금도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도 ‘죽음’은 언제든 찾아온다.
다 지나간 이야기였으면 좋겠지만
떠올리기 싫어도
전화벨 소리처럼 갑자기 울린다.
지울 수도, 빼낼 수도 없을 만큼
진득하게 나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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