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설이다.
이것은 소설이다.
2025.11.10
admin·⌛9분

이것은 소설이다.

음주운전으로 진급이 3년이나 누락되었던 나는 그 흔한 24시 편의점 하나 없는 이곳으로 좌천되었다.
계급이 돈이고 무기고 권력인 이 바닥에서 나는 0에서 시작이 아닌 -1825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걸릴 수 있다. 일 년마다 바뀌는 소장들에게 매번 새로운 평판을 쌓기 위해 연기해야 했다. 졸지에 주말부부가 되어버린 신혼 2년 차에 이 상황에도 날 탓하지 않고 믿어주던 와이프에게 고마웠고 미안했다.

곰팡이 가득한 좁은 기숙사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게 생각나지 않을 때쯤 완벽히 적응이 되었다.
장소와 사람에 적응이 되고 이제 동기보다 늦어진 진급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가 굉장히 재미없다는 생각에 필요할 때만 머리를 꺼내 쓰는 버릇이 있는데, 빛 못 보던 이 상황을 벗어날 유일한 돌파구는 아이큐 140이라는 숫자를 꺼내 쓸 차례다. 동기들보다 이미 진급이 3년이나 누락되었고 아무 결과도 갖지 못하는 시험이지만 앞서 3번의 진급시험을 만점을 받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어느 정도 내가 계획했던 미래의 그림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내는 매년 나의 내조를 해야 한다며 칙칙한 남자들만 가득한 이곳에 수십 개의 오색찬란한 초콜릿이며 빼빼로며 선물들을 보내줬다.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6급 진급시험의 기회가 왔다.
근데 이상하다. 힘이 부친다. 이번에도 만점이냐는 인사치레의 말에 화가 난다. 주말마다 같이 독서실에 따라가 함께 이것저것 공부를 하는 아내가 불편하다. 명절마다 잔뜩 음식을 만들어 날기다리는 엄마와 아버지가 부담스럽다. 얼마 전 4급 진급시험에 붙은 부서 내 과장님이 유일한 내 안식처다. 나와 비슷한 상황 안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아 나가시는 과장님을 보고 있으면 너무 대단해 보이면서도 그 모습이 응원이 된다.

진급시험이 3개월 남았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은 시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 시골에서 매일 반복되는 시시한 하루하루와 반복되는 와이프의 연락들 속에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런 불안한 마음 중에 퇴근 후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도 고생했다는 아내의 연락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한동안 집에 못 갈 것 같다고 전했다. 뒤늦은 답변에 그녀는 보고 싶지만 참아 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녀가... 불편하다.

진급시험 1개월 남았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를 나를 감싸고 있는 여전히 불편한 이 마음들..
집에 가는 발길이 무겁다.
아내를 마주 했다. 평소와는 다른 회색의 공기다.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한참의 침묵 속에서도 그녀는 땡그란 눈으로 나를 기다린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헤어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갑자기 왜 그러냐고 공부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 거냐며 자기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답답하다. 귀가 멍해진다. 공간이 거대해지고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침묵밖에 취할 수 있는 게 없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틀어진 걸까.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온 걸까?
모르겠다. 상대에게 이유를 정확히 말해야 하는 게 맞는데 무어라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공부가 문제인 건가? 모든 게 불편해지는 이 상황이 혼란스럽다. 미안해지고 사과를 하고 왜 미안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근데 미안하고 근데 화가 나고 답답하고 이 집이 날 숨 막히게 하는 것 같다.

내 문제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울었고 나는, 네가 잘못한 게 없다고 말했다.

진급은 망했다.
인사고과 순위에서도 밀렸고 시험 또한 엉망이었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대로 헤어짐을 선택해 줬고 나는 그렇게 이곳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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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맨얼굴

작가 서문
그는 나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단어들과 최악의 침묵들로 이별을 고했으며 우리의 이별을 나에게 이해시켰습니다.
이별을 통보받고 펑펑 울던 그날 밤을 채 지우지도 못한 채 아침 출근길 매일 방문하던 카페의 사장님이 저에게 이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나쁜 일이라고는 하나 없는 사람처럼 밝고 명랑하세요?!"

내가 겪은 이 상황을 글로 쓰려 할 때마다 눈물이 너무 나서 북받치는 감정에 항상 실패했는데, 드디어 써 내려갑니다. 안녕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가세요."

나의 맨얼굴은,
당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결국 이렇게 세상에 당신을 비난의 목적으로 꺼내는 짓을 기꺼이 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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