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면의 깊은 우울이 있다. 이 이야기는 부모님도, 친구도 잘 모른다. 나의 친언니, 남편, 친구 한 명만 알고 있다. 친언니랑 친구도 조금 밖에 모르고, 깊게 아는 건 남편 뿐이다.
언젠가 내 우울은 너무 크고 깊어서 가라앉기 전에 끊임없이 물을 퍼내야한다는, 이런 비슷한 글귀를 본적이 있다. 그 당시 저 말이 정말 와닿았다. 나도 우울해질때면 끝없이 추락하고 가라앉아서 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으니까.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기쁘고, 밝았던 기억이 잘 없다. 그냥 매일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게 정상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냥 내 기본 성향 자체가 우울한거였다. 아무도 몰랐고, 나 자신조차 몰랐지만 오래 지속된 우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냉소적인 가사가 담긴 노래, 우울한 느낌의 노래와 결이 잘 맞았던거였다. 그런 음악을 통해 나는 10대, 20대를 위로 받았다.
내 우울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07년, 16년, 21년, 23년이다. 그 중 약물치료를 받은 건 21년, 23년 두번이다. 그 때 잘 치료 받아서인지 지금까지는 우울이 불쑥 고개를 드는 일은 없다. 다음 우울은 아마 한달 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시기나, 둘째를 출산한 26년 1월쯤으로 예상해본다.
21년에는 두 번 정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을지를 상상했다. '끈은 어딨더라? 무슨 끈을 써야하지?', '지금 바로 강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다 스스로 깜짝 놀라서 두 번 다 그만뒀다. '이래서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구나..', '이렇게 해서 실행한 게 성공하면 진짜로 죽게 되는구나'를 몸소 체감했다.
내가 아는 그 우울한 느낌이 찾아오면, 너무 익숙하지만 동시에 무섭다. '또...? 아니겠지' 하다가도 며칠 지속되면 '역시 또인가..'라는 생각에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울로 바닥을 쳐보고 난 뒤에 나는 상담할 때 내담자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내담자가 우울하다는 그 느낌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잘 느낄 수 있다. 21년에 내가 우울로 발버둥칠 때, 같은 문제로 길게 상담을 진행하던 내담자가 있었다. 내담자와 꽤 오래 만났기에 자기 개방을 한 적이 있다. 내담자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우울한 분이 어떻게.."라는 말과 동시에 "그럼에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묘하게 고마웠다. 내담자는 나에게 '실망했어요.', '더 건강한 분과 하고 싶어요.'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보통 상담자는 건강할거라는 믿음과 고정관념이 알게 모르게 있다. 사실 상담자 뿐만 아니라 삶에서 우리 모두가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고 밝아보이지만, 속은 곪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우울할 때 버티는 방법은 사실 잘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약이 잘 들었다. 약을 먹어 조금이나마 힘을 내고 살았다. 의사가 하라는대로 열심히 먹었다. 약을 증량해서 변비가 오면 오는대로, 잠이 오면 오는대로 살아냈다. 그러다 약을 조금 줄이면 기쁜 마음으로 또 살았다.
우울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 바닥 중 가장 치명적이다. 다른 건 내가 행동을 변화시키나 습관을 몇 개 고치면 된다. '어쩌라고?' 하고 넘기면 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우울은 생활 전반을 잡아먹는다. 우울한 모습으로는 사람을 만나기도 싫다. 만나서 우울함을 전파하기도 싫고, 억지로 괜찮은 척 하기도 힘들다. 이런 모습을 이해해줄거라는 기대감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울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재발확률이 높아서 살면서 한 두번은 또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예전과는 다르게 '또 이녀석이 찾아왔군..' 하고 맞이하고 잘 다스려볼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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